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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울 May 18. 2023

너를 만나기

나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요즘은 대안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대안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은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내가 지향하는 교육에 대한 방향과 대안학교의 그것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영어교육에서 지향하는 바와 맞아떨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숙제, 학습, 의무와 같은 단어들이 익숙한 나에게, 그렇게 자라오고 그렇게 가르친 나에게, 자율, 동기, 자유와 같은 단어들을 갑자기 채우는 일은 그래, 나에게 도전이다. 


어쩌면 교재에 있는 진도를 나가고, 그 진도에 맞게 선행과 후행학습과제를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교재가 없고, 진도도 내가 정한다. 효율은 여기서는 큰 미덕이 아니다. 효율을 따지는 선생님이자만 학생들은 크게 관여치 않는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진지함은 더 크다.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도 더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의 뒷마당, 교실에서 교실로 가는 길이 나는 마음에 든다. 꽃이 피어있고, 나무가 자라고, 그 돌계단이 있다. 뒷마당의 3층 짜리 건물, 꼭대기에 자리 잡은 교실은 햇살이 가득 들어올 뿐 아니라, 긴 창으로 도심과 산, 하늘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혼잡했던 마음이 그곳에서는 밝아진다. 물론 수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자유와 자율에서 권위와 통제를 가지기란 힘들다. 그래서 때론 내가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솔직히 얼마간 이 학교에 걸맞은 선생님인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생업에 대해 고민할 때는 삶 전반에 먹구름이 낀다. 마치 가족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처럼 '일'도 그러하다. 내가 일을 사랑할 때 더욱 그렇다. 나는 나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이 되었고 우리 학교는 스승의 날에 수업이 없었다. 나는 그날, 나의 어린아이 유치원에서 일일 선생님이 되어주기로 했다. 원장님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지만, (신청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매우 낯설어했다. 나의 예상과 달랐다. 아이는 조금은 얼어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가 '이게 꿈인가? 내 엄마가 맞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는 특별하다. 우리는 매일 민낯의 얼굴을 보기 때문이다. 가장 솔직한 고유의 모습을 믿고 보여주는 관계에는 신뢰, 사랑, 감사가 쌓이기 마련이다. 물론 가까운 관계이니만큼 갈등과 책임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치 있는 관계에는 책임이 따른다. 여하튼, 그런 민낯의 만남이 쌓여서 우리는 완벽히 신뢰하는 한쌍의 모자가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치원에서는 아이와의 적절한 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민낯이 아닌, 각자의 역할에 맞는 옷을 입은 사회에서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의 만남은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거리 안에서 나의 교육 방법에 대한 불확신까지 더해져 나는 닿지 않는 배를 앞에 둔 것처럼 마냥 서성였다는 생각. 


스승의 날이 하루 지나고 학교에 갔다. 그랬더니 나에게 한 꾸러미 편지와 선물을 동료선생님께서 주셨다. 이렇게 많은 카드는 처음 받아보았다. 학생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그간의 생각들이 녹아져 내려가는 듯했다. 






나는 부버의 말을 좋아한다. 

교육학을 배울 때, 부버의 교육관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그는 교육은 만남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를 진정으로 만나게 될 때, 우리의 가슴은 서로에게 닿는다. 오해도 생기기도 하지만,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슬프기도, 때로는 기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그 시간은 아깝지가 않다. 


부버의 말을 오늘 아침에는 떠올렸다. 

나와 학생 간에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졌는가. 

카드를 받았다고,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겠지. 설레발치지는 말자. 하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을 본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았기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들어선 길에서 우회하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들이 흔들릴 때는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지. 그래야 내가 중심을 잡아줄 수 있으니까.


행하면서 배운다. 나는 오랜 기간 배우고 익혔지만, 이렇게 일을 하면서, 생업 속에서 진정으로 배워나간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업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의 만남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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