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바닷가에서 정말로 빠져 죽을 뻔했던 일이 있다. 이안류에 휩쓸려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간 나는 순식간에 닥치는 파도를 피해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 순간 아침에 집을 나서는 나를 향해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바닷가에선 항상 조심해라!"
이 말이 내가 가족과 나눈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며 나는 서서히 힘을 뺐다. 한 번이라도 더 이안류에 거슬러 헤엄을 치다가는 내 몸을 덮는 파도에 휩쓸려 버릴 것이다. 그 직감을 믿고 나는 모든 힘을 빼고 파도에 몸을 맡겼다. 여전히 청명한 하늘을 향해 돌아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한 일행이 오후에 퇴근하려고 준비 중인 구급대원들을 불렀고 대원들은 구명장비도 없이 우리를 구하러 왔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조금이라도 늦어 그들이 떠났더라면, 친구들이 우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튜브에서 구호를 기다렸던 친구들과 달리 혼자 동떨어져 있던 나를 우연히 구급대원들이 발견했고 나는 한 이름 모를 대원의 사력에 힘입어 목숨을 건졌다. 내 생명의 은인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지도 못한 채 나는 덜덜 떨며 바닷가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하나의 사건은 내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내 머리를 채우고 있던 내가 이루어야 할 목록들이 모두 휴지통으로 비워졌다. 삶의 끝이 바로 내 앞에 있을지 모르는데 그딴 목록들로 내 삶을 채울 수는 없었다. 내가 마음을 뺏겼던 많은 삶의 중대한 것들이 그 순간에 전혀 떠오르지도 않았다면 왜 그것을 위해 시간을 더 낭비해야 하는가.
파도 앞에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후회는 그때 그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험에 매진하느라 고통 속에 헤매던 시간이었다. 이미 헤어진 인연을 향한 미련으로 멀리사는 친구에게 전화 한번 못했던 아쉬움이었다. 사느라 바빠, 실은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표현 한번 하지 못한 후회였다.
그때 그 사건은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고 속도를 낮추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나는 다시 허망한 목적지에 고정하고 쉼 없이 내 마음의 연료를 태우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에 대해 쓰고자 한다. 사실 이 이야기에 대해 나는 정리도 되지 않고 다듬을 자신도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 나는 그 어떤 다음 이야기도 넘어갈 수 없기에 조심스레 말을 꺼내고자 한다.
사흘 전 내 친한 친구의 딸이 급작스레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홉 해를 살고 하루아침에 허망히 떠나버린 것이다.
어떤 일은 그저 완벽한 고통이라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런 가혹한 이별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며칠을 함께 울고 함께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녀에게 미안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가슴에 사무치는 이별이 우리 도처에는 널려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이 거대한 섭리 안에서 어떠한 비밀도 알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것이다.
남은 자에게는 해야 할 특별한 일이 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방향과 속도를 완전히 바꾸어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벗들을 기쁘게 사랑하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오늘 하루가 있다는 것은 내가 기워갚아야 할 사랑의 임무가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과제였다.
지금 여기, now and here.
나와 네가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끼지 말자.
사랑하고 싶은 마음, 감사하고 싶은 마음, 위로하고 싶은 마음,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우리는 더 이상 아끼지 말기로 하자.
나의 좁은 어깨도 내가 사랑하는 친구의 고통 정도는 함께 짊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후회 없이 사랑하고 위로를 주어야 할 가엽고 애달픈 마음은 바로 내 옆에 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이 가난하고 외로운 마음들을 위로하고 싶다. 한없이 긴 터널을 지나는 올해, 특히나 시린 겨울의 끝에서 나는 그대들을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