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품 바다

송정에서 바다를 새겨주다.

by 민지울

아침에 일어나 엄마, 아빠, 나 커피 세 잔을 만들려고 커피통을 여니 원두가 똑 떨어져 있었다.

“엄마! 커피가 없어요.”

“응. 엄마는 안 먹을게.”


결국 커피 두 잔도 안 되는 양을 세 커피 마니아들이 나누어 마시고 얼른 나갈 준비를 했다. 종종 커피 원두를 사러 나갔던 카페로 차를 몰았다.


광안대교를 타고 눈부신 바다 구경을 하다 보니 아들내미는 그새 낮잠이 들고 말았다. 나 혼자 창밖을 보면서 실컷 눈호강을 한다. 요즘은 이렇게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 감옥 속에서도 작은 창살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가 될 지경이다.



부산에서 나고 30여 년을 살았던 만큼 주변에서 부산에 오면 어디를 관광해야 할지 추천해달라고 많이들 물어본다. 부산에 와서 바다를 보고 가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 세 바다 중 한 군데를 가보라고 추천한다. 그 바다들은 광안리, 해운대 그리고 송정이다. 물론 송정 너머로 더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해변이 군데군데 펼쳐져있지만 여유가 많이 없는 관광객에게는 이 세 바다를 적절히 선택해서 가보기를 권한다.


차례로 광안리, 해운대, 송정 바닷가

먼저 광안리는 부산 도심에서 가깝고 광안대교 전망이 있어 운치가 있다. 비교적 세련된 느낌으로 맛집들과 카페들을 잘 구비해둔 알찬 해변이다. 바다를 친구 삼아 모랫길을 걷기에도 더없이 좋다. 명소로 유명한 해운대는 이미 해수욕하기 좋은 바닷물과 드넓은 모래사장으로 대체 불가한 한국의 바닷가이다. 사실 지역주민보다도 관광객이 더 많을 정도로 계절에 상관없이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관광지답게 멋진 호텔들과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들도 많고 조금 더 들어가면 전통시장까지 있어 이것저것 먹고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이처럼 유명한 두 바다를 지나 자리한 바다, 송정은 사실 내가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드라이브하며 즐기기에도 좋고 한적하니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수다의 장을 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세련되고 북적되는 모습은 아니더라도 서퍼들의 열정 어린 모습을 배경 삼아 보다 진중하게 감상하기에 좋은 바닷가이다.


언제나 내가 쓰는 이력서에 맨 앞줄은 이렇게 시작된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바다 소녀, 000입니다.”

나는 자칭 바다 소녀였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집의 베란다 창 너머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바다였다. 어느 날은 잔잔한 물결로, 또 어떤 날에는 굽이치는 파도로, 바다는 늘 시시각각 다른 색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창문을 열면 언제나 바다내음이 났다. 엄마는 기상예보보다 빨리 태풍을 예고하곤 하셨다. 바다가 뒤집어지는 냄새를 맡았다는 이유였다.

내 놀이터란 집 앞에 있는 단지네 미끄럼틀 뒤편으로 뻗어 있는 바닷가의 알록달록한 색깔의 방파제였다.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는 바로 그 방파제들을 타고 내려가서 시퍼런 바닷물이 철썩철썩 들이치는 방파제들 사이 그 작은 틈이었다. 분필로 표시를 해 놓은 방파제 아지트 속에는 나름 버려진 물건들로 아늑하게 꾸며둔 공간이 되었고 썩 친하지 않은 친구들도 가족이 되는 신기한 장소였다.


이렇듯 나의 정체성의 일부가 그 시절 바다놀이터에서 형성되었음을 나는 후에 알았다. 어느덧 커서 도심 안에서만 생활해야 했던 시절, 나는 자주 바다가 그리웠다. 언제나 나는 바다 풍경을 걸친 집이 그리웠다.


하늘과 땅으로는 가끔 부족할 때가 있다.

오랜만에 간 송정 바닷가는 내 맘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내 마음의 작은 바다와 내 추억의 바다가 만나는 파문.

시간과 사건을 넘어서는 역동성, 밀물과 썰물을 쉼 없이 반복하는 끈기, 때로는 숨을 멎은 듯 잔잔한 수평선으로 내 마음의 물결마저 건드리는 바다.


그 위로 비치는 둥근 해 아래로 은은한 보석 빛을 내뿜는 바다 위 해의 길.


나는 도시에서 태어난 내 아이도 마음속에 그런 작은 바다 하나쯤은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낮에는 해 하나를 띄어두고

밤에는 달 하나를 띄어두는

작은 바다 하나쯤 마음에 품어두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