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에 떠난 칠레 워킹홀리데이 24. 문화
"우와, 앤디 워홀 전시가 12시 이전에는 무료래!"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칠레인 남자인 친구 가보가 핫한 소식을 전해왔다. 앤디 워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무료로 문화생활이라니. 횡재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라모네다 궁 지하 문화센터에서 한다 하니 기필코 현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모네다 궁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사실 칠레에서 문화생활은 딱히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공공장소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음악 연주며(아마추어 학생부터 유명한 악단들도 공연을 하곤 한다) 길거리 살사 공연과 수업,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개방되는 미술관과 박물관. 그 모든 게 남미 사람들 특유의 실생활 문화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진입장벽이 낮아 남녀노소 즐길 수 있음에 외국인으로서 무척이나 감동받은 순간들도 몇 번 있었다. 그중 몇몇 문화 장소를 소개하고자 한다.
무료한 금요일 오전(12시 이전에 오면 관람이 무료, 하지만 매번 전시는 상이함) 일찍 집을 나서 가보 친구 마리솔과 함께 라모네다역으로 향했다. 늘 그곳을 지나치면서도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들어가 보지 않을 만한, 그런 곳이었다. 현지인 친구들이 함께 하기에 부담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
http://www.cclm.cl/ 공식 홈페이지 참조
모네다 궁 지하에 위치한 문화센터는 문화센터라 하기에는 규모가 크고 전시관도 넓었다. 지상 1층에 지하 3층까지 있는데, 앤디 워홀 관람장도 좌우로 2군데 위치해 있다. 앞에서 노란색 표를 두 장 주는데, 버리지 말고 입장할 때 꼭 보여줘야 입장이 가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중간에 위치한 큰 홀에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날이라니! 메트로에서 칠레-일본 합동 클래식 콘서트가 있다는 광고를 봤었는데, 마침 그 날이었던 것! 사실 앤디 워홀 관람보다 더 흥미로웠다(앤디 워홀에 대한 무지에서 온 참극) 양 끝 쪽 전시장 사이로 대규모 클래식 콘서트를 할 정도이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함을 느낄 수 있다.
120년이나 된 클래식 콘서트라니. 실제로 연주단 역시 칠레인과 일본인 반반씩 섞여 있었고 곡도 동서양을 합한 멋진 공연이었다. 관람객들의 반응을 자세히 살폈는데, 음악 하나에 이렇게 다들 행복한 얼굴을 할 수 있다니 새삼 놀랬다. 거기다 이들에게 생소한 동양문화를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으리라.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퇴장할 때까지 힘껏 브라보를 외쳤다.
현지인 친구들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했던 이날, 내 일기장에는 그 날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우리와 상이하게 다른 지구 반대편의 그것을 느끼기 위해, 그들이 어떤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를 무척이나 궁금해했던 어린 내가 지금은 그 꿈을 이루고 있음을 무척이나 뿌듯해했고, 행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