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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죰 Feb 12. 2019

스웨덴 워홀 도전기 - 왜 하필 스웨덴이야?

왜 베를린, 캘리포니아가 아닌 하필 스톡홀름을 선택했는가

 고국에서의 나름 안정적이고 순조로웠던 삶을 억지로 끊어낸 후 워킹 홀리데이로 스웨덴 스톡홀름에 날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2016년 첫 스톡홀름 여행부터 지금까지 줄곧 스웨덴에 살겠다는 다짐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왜 스웨덴인지에 대해" 대해 명쾌하고 요점만 집어 타인에게 설명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너무 당연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더더욱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 없이 특히 '스웨덴인에게' 내가 스웨덴에 온 이유를 설명할 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피상적인 모범답변을 꺼낸다.

1) 자연과 도시생활과의 조화.

 서울은 대단히 훌륭한 도시이지만 동시에 가장 높은 수준의 인구밀도로 일상에서 숨을 옥죄는 곳이다. 도시를 둘러싼 빼곡한 빌딩 숲 사이로 하늘은 손바닥 만하게 보이는데 이마저도 먼지에 가려 항상 회색빛을 띤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개인적 의견이다.) 처음 스톡홀름에 왔을 때, 한 나라의 수도인 대도시가 이토록 환경 친화적이고 깨끗한 물가와 청명한 하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물론 날씨는 서울보다 나쁘지만 말이다. 다양하게 포진한 도시 곳곳의 공원도, 잠시간 숨 돌릴 수 있는 산책로가 즐비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2) 테크 분야를 선도하며 성숙도 높은 산업을 자랑하는 강소국.

스웨덴은 단위 인구 당 가장 많은 창의적 선도기업을 보유한 나라다. 스웨덴에서 만들어졌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모르는 기업은 스포티파이, 스카이프, 킹(캔디 크러시), Mojang(마인크래프트) 등등이 있고, 오랜 기간 명성을 유지해온 장수 기업으로는 이케아, 볼보, 일렉트로룩스가 있다. 즉, 스웨덴은 인구가 채 한국의 5분이 1이 되지 않지만 산업화 이래로 명성이 자자한 기업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 중 하나다. 이렇듯 산업 성숙도가 높고 10년 단위로 글로벌한 명성의 혁신 기업을 쏟아내지만 인구 천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나라라는게 매력적이었다.


 위 이유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아주 간단하게, 동시에 감정적인 개인사와 거리를 둘 수 있어 즐겨 쓰는 답변이다.

그러나 브런치에 이런 피상적이고 뉴스에 나올 법한 답변을 찾으러 온 독자는 없을 것을 감안하여, 상기 이유 외에도 다분히 개인 서사가 얽혀있는 진실한 이유가 있다면 다음과 같다.


1) 그냥 살면서 한 번쯤 해외에서 취업해 살아보고 싶었다.

 한국에선 흔한 조합이며 동시에 내가 자란 동네에서 결코 흔하지 않은 내 이력은 다음과 같다. 학부는 서울 사립대. 해외 장기 체류 경험 없음. 그러나 외국어를 놓지 않고 해외에 줄곧 관심과 환상을 가져온 사람.

차라리 어릴 적 유학 경험이라도 있었으면 '한국이 결국엔 가장 좋은 나라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발언 권력이라도 생길 텐데 그마저도 없는 게 억울했다. 교환학생 시절 반년이 채 되지 못해 결국 해외 생활의 감질맛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싫었다. 길게는 몇 년씩이라도 해외에서 돈 벌고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했고, 전공이었던 신문방송학 계열과 꾸준히 공부해온 영어를 통해 다른 세상 너머 소식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며 편재된 정보를 수집해 장기 프로젝트화 했다.


2) 한국 직장문화 한 줄 요약 :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위계질서'

 줄곧 한국서 살아왔음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적응이 되지 않는 한국의 문화가 있다면, 나이, 성별, 직급에 대한 위계질서와 이에 따른  차별이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며 한계를 느낀 부분이다. 제 아무리 외국계 기업이니 스타트업에 다니니 해도, 제발 위계 없이 솔직하게 터놓는 커뮤니케이션과 피드백을 달라고 애원하고 장려해도 결국 뿌리 깊게 내린 위계는 매일같이 가장 어리고, 직급이 낮았고, 소위 '을'의 입장이었던 내게 기대 행동을 상기시켰다. "네가 을이니까 을답게 행동하라고!", "본인이 가장 막내인 건 알죠? 막내답게 굴어요", "넌 너 직급이 뭐라고 생각해? 참 X가지가 없어" 이렇게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기대 이상의 위계를 인지하게 하는 문화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리고 최대한 수평적이고 권위에 필요 이상으로 굴종하지 않으며 내 의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로 이주를 결심했다.


3) '워홀러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 그 끝이 귀환이더라도

"호주도 있고, 독일 베를린도 있고, 런던도 있는데 왜 하필?"이라는 질문에 대답하자면, 조금 더 일반 사람에게 덜 알려졌으며 조금 더 도전해야 하는 나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만 리서치해봐도, 실 거주자들은 대부분 스웨덴에 대한 이미지는 허상이며, 워홀러들이 줄곧 짐을 싸고 돌아갈 만큼 쉬이 더 깊은 세계로 길을 내주지 않는 나라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듯 '나' -' 타인' (실 거주자)- '실제 스웨덴' 세 주체 간에 발생하는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내가 생각을 바꾸거나 둘째, 타인과 내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어쨌거나 두 가지 결론은 모두 "내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다"라고 귀결되곤 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지언정 경험해보고 후회하고 싶었고, 따라서 이곳에서 어려움을 이기고 두배 더 노력해보자 다짐했다.




사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한다 해도 뒤돌아서면 다른 이유가 마음에 와 닿을 때도 있다. 이주하고자 각종 정보를 조각조각 맞추는 데는 쉬웠어도 실제 사는데 어려움과 고충을 듣게 되면 나 역시도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렇지만 설사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살던 삶이 더 낫다고 판단할지라도, 한번 사는 인생 경험하고 후회해보자고 하는 신조로 오늘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내 글은 젊은 날 도전했던 나에 대한 기록이며 내 삶의 다채로웠던 한 면으로 장식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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