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식 영어를 씁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든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든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으레 한 번씩은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에서 공부하신다고요? 그러면 영국식 영어 쓰시겠네요?"
"영국서 사세요? 그러면 영국 영어 하시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예, 아니오로 대답하기 참 힘든 질문이다. 정말 제대로 심도 있는 답을 하려면 언어라는 놈의 본질까지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다가 상대방이 원하는 답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 터라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늘 머뭇거리곤 했다. 가끔은 정말 내가 흔히들 말하는 영국식 영어를 쓰고 있는지 아닌지 고민을 해 보는 일도 잦아졌었다.
그러다 최근 나름 모범 답안이라고 준비를 했다. 상대방이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름의 고민의 결과였고, 지금의 나를 혹은 내가 쓰고 있는 영어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답이라는 생각에 혼자 괜히 어깨도 으쓱해졌다.
"네, 저는 지금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식 영어를 씁니다. 한국어가 제 모국어이니까요."
이 부분을 제대로 파고 들려면 우리 나라의 역사적인 배경부터 제대로 언급해야하겠지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우리 생활 속에 영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들이 쓰는 소위 British English 라는 것이 등장한 지 그리 오래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광적인 EFL 팬이나 전 세계의 프린세스였던 다이아나, 비틀즈, 해리포터 등을 생각하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배우는 [영어]라는 놈을 생각한다면, 영국 신사의 대명서 콜린 퍼스나 휴 그랜트 (이 분은 현재로서는 이렇게 부르기 힘들지만, 개봉 당시 영화 '노팅힐'의 위력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영국 남자의 이미지를 제대로 남겨 두고 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가 쓸 법한 그 영국 영어가 강남역 영어 학원의 수업 시간에 틀어진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었다.
필자가 온갖 종류의 영어 학원을 다니며 영어 회화에 목 멜 때 좋은 발음의 기준은 얼마나 미국인처럼 알파벳 'R' 발음을 잘 구사하느냐, 미드 '프렌즈'의 레이첼처럼 세련된 뉴욕 사람의 목소리를 내느냐였으니깐. 'T'를 적힌 대로 'ㅌ'로 발음했다가는 어디서 굴러 들어온 식민지 영어냐며 놀림 받는 경우도 대다수였다. 물론 개인차도 있겠지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 영국식 발음을 하는 사람을 떠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리라.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건 우리 나라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영국의 컨텐츠를 지금처럼 다방면에서 받아들이기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Harry Potter를 해뤼 포러~ 가 아니라 해리 포터라고 읽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워터, 버터, 새터데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더 이상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으며, 우리가 [네이티브 스피커]라고 생각하던 미국인들이 되려 영국식 발음에 대한 기묘한 환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 이상 영국식 영어가 [틀린 영어] 혹은 [변두리의 영어]가 아니게 되었다. 거기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이마에 흉터가 있는 그 아이라든가 세계 유명 구단에서 늘 껌을 씹고 있는 감독님 아래에서 열심히 공을 찼던 축구 선수 등을 통해 2000년 대에 들어서 영국식 영어가 우리 일상 속에 등장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의 영국식 영어의 입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그 유입 시기나 자리 매김이 다르게 평가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80년대 중반에 태어나 90년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영어 공부라는 걸 운명으로 생각하고 계속 했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보인다.)
영국식 영어의 존재를 알기 시작한 탓이었을까? 미디어 등에 실소가 터지는 의견들도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실사판이 막 개봉했을 때였다. 개봉 당시 많은 팬을 남겼던 미녀와 야수 원작 애니메이션이 실제 배우들과 훌륭한 CG 기술을 통해 스크린에 다시 수놓아졌다. 옛날 옛적 프랑스 (유럽) 어느 시골 마을이라는 배경 설정을 의식한 건지 남녀 주연 배우는 모두 영국인이었고, 해리포터와 다운튼 애비라는 각자의 대표작에서 얻은 이미지에 힘 입어 주요 캐릭터들도 잘 연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신문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 대한 어느 영화 전문가의 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꽤 평이 좋았다. 마지막 단 한 줄을 빼고는. 정확히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영화 자체는 다 좋았으나 프랑스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들이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건 옥의 티였던 것 같다."
팩트만 두고 보면 아예 근거가 없는 평은 아니다. 실제로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고,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등장 인물의 이름이 프랑스식 이름이었다. 그러니 벨과 야수의 소위 영국식 악센트가 더 강하게 들려왔을 수도 있겠다. 다만 여기서 필자가 가졌던 의문은,
1. 미국에서 만들어진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벨과 야수가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 미국식 영어를 쓰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외칠 때에는 이런 평이 나왔었던가?
2. 그렇다면 주연 배우들이 미국인이었고, 미국식 영어로 연기를 했으면 이 평론가의 귀에 배우들의 억양이 거슬리지 않았을까?
3. 프랑스어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이상 여기서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를 따지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
그 동안 헐리우드에서 수많은 유럽 배경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그 때마다 독일인이어야 할 혹은 프랑스인이어야 할 미국인 주연 배우들의 억양에 대한 비평은 전무했다. 미국식이 아닌 [영국식 영어]라는 놈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 아니었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지리적으로도 미국이 영국보다 프랑스 (유럽)에서 훨씬 먼데...)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그곳에 영어라는 놈을 처음 만나 계속 배워온 덕에 어릴 적 늘 듣던 영어는 미국 영어였고, 학원 등에서 만난 영어 선생님은 미국이나 간혹 가다 캐나다 등 북미 출신이었으며, 영어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R 발음을 위해 혀를 찰지게 잘 굴려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식의 학교 성적에는 그닥 관심이 없지만, 영어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아낌 없이 투자하셨던 부모님 덕에 외국에서 살아 본 적은 없었지만, 어디 가서 영어 못 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정말 살다 온 이민, 유학을 경험한 친구들에 비교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10대, 20대 초반의 나의 영어를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R 발음 하나는 정말 잘 했던 것 같다.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대학 공부를 시작하고, 지방에서 온 학생이라는 이미지 정도만 가지고 있던 내가 우연히 실용 영어 수업 중에 텍스트 하나를 읽었을 때 옆자리 친구들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따라 유난히 발음이 잘 되기도 했다.)
그 때마다 어디 미국이나 외국에서 살다 왔냐는 얘기도 들었었고,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영어 좀 하는 애' 라는 태그를 다시 달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 발음이나 스피킹 한정이었던 것 같다. 모든 대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던 토익 고득점은 정말 다른 세상 이야기였고, 문법 상태는 더더욱 고약했다. 3형식, 4형식 문장 이런 건 들어 본 적도 없었고, 성문 영어라는 책은 사 본 적도 없었다. 여튼 미국인처럼 발음이 좋다는 걸 칭찬으로 받아 들이고, 나름의 자신감에 충만해 그렇게 캠퍼스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예전의 그 R 발음을 하지 못한다. 뭔가 나름 혀를 굴리면 굴려 보겠지만, 가십걸의 세레나, 프렌즈의 레이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기특했던 그 미국식 발음은 지금은 자리를 만들어 하라고 해도 나오지가 않는다.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 나이 스물 셋에서 스물 넷 사이에 약 일 년 정도 영국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벌써 십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혹은 내 영어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영국은 R 발음을 잘 하는 것이 대접 받는 곳이 아니었다. 미국식 영어에만 익숙해있던 필자에게 그곳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랭귀지 스쿨에서 좋아하는 영어를 실컷 배우며 보낸 11개월이라는 시간은 더 없이 즐거웠고, 더 이상 CNN이 아니라 BBC 뉴스를 보며 영어 청취 연습을 했고, 프렌즈가 아니라 Skins나 Hollyoaks 같은 영드를 보며 일상 회화 표현을 익히기 시작했다.
즐거웠던 만큼 현지에 융화되고 싶었고, 빨리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었다. 미국식 발음이 한국에서 만큼 대접 받지 못한다는 걸 유학 생활 초창기에 깨달았던 나는 당시 같은 학교에 다니던 다른 한국 유학생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꽤 빨리 새로운 발음과 억양을 익힐 수 있었다. (기존 억양에 변화를 주는 건 사실 스무 살 시절 상경과 동시에 한 번 경험했었다.)
간혹 가다 "Where are you from? Your accent is great!" 라는 말을 영국 현지인에게 듣기라도 하면 고래가 춤을 추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린 시절 미국 사람처럼 영어를 한다는 칭찬을 들을 때 느꼈던 바로 그 으쓱함이 그렇게 또 반복됐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어 공부는 계속 되었고, 공부를 위한 컨텐츠는 모두 영국에서 넘어오거나 제작된 걸 계속 선호했다. 영어 학원을 찾아도 선생님이 미국인이 아닌 영국인인 곳을 찾기도 했다. 그렇게 영어 학원을 가거나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영어를 쓸 일이 있으면 그 때부터 질문 폭격은 시작됐다. "영어 어디서 배웠어?" "와, 영국 영어 쓰는 구나!"
솔직히 말해서 우쭐해졌던 것 같다. 영어를 더 잘 하게 된 것도 좋았지만, 의식해서 고친 나의 억양이 더 이상 미국식이 아닌 영국식에 가까워진 것 같아 그 노력을 보상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미국식 억양에 익숙했던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나홀로 다른 말투를 쓰는 것도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아 그 우쭐함에 도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우쭐함도 잠시, 잔혹한 현실은 망치가 되어 내 뒤통수를 치기 시작한다. 어느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영국인 친구가 나의 영어를 평가해 주기를, "글쎄? 영국 느낌인지는 모르겠고, 러시아 사람이 영어하는 것 같긴 해!"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지만, 꽤 충격이었다. 이제 나 정도면 어디 가서 영어 못 한다는 소리는 들을 일 없을테고, 발음도 억양도 영국 다녀온 티가 팍팍 나겠지! 라고 생각하는 오만함이었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나의 영어가 어디쯤에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실력도 실력이지만, 영국식 억양에 대한 로망과 현실 속의 나의 영어의 차이도 그 때부터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영국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날 일기장에 끄적여 놓은 한 구절을 지금 보면 퍽이나 귀엽다. 당시에는 아주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었으리라.
내 영어는 세계 지도로 치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영국에 잘 도착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영국까지는 못 가고, 그 옆에 러시아 어디 즈음에서 멈췄나 보다.
-2011년 어느 가을날-
그때부터 본격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 영국 친구의 말에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나 보다.)
한국인이나 북미 친구들은 내 억양이 영국에서 살아 본 티가 많이 난다고 그랬는데 왜 정작 영국인 친구에게는 다르게 들리는 거지?
지금까지 철썩 같이 영국인 같은 억양을 쓰고 있다고 믿었는데 러시아인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건 내 영어가 러시아식 영어라는 건가?
더 이상 미국식 발음을 하지 않는 건 확실한데?
그러면 내 영어는 어디 영어인 거지?
그런데 영어가 영국식과 미국식 밖에 없나?
그런데 내 영어가 어디 영어인 게 그렇게 중요한가?
생각이 여기까지 오고 나니 내가 계속 가졌던 궁금증이 시작된 본질에 도착했다.
1. 영어 같은 외국어를 배우면서 가장 중요한 건 과연 현지인 같은 억양인가 아니면 적절한 어휘 선택인가?
2. 왜 사람들은 특정 언어 혹은 억양에 열광하고 동경하는가?
3. 사람들이 동경하는 건 그 언어인가 아니면 그 언어가 사용되는 그 특정 집단인가?
사실 이 궁금증은 영국 영어냐 미국 영어냐에 대한 문제보다 더 크게 다가와서 결국에는 필자로 하여금 언어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해 영국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하게 한다.
그렇다. 그렇게 영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영국 안에서도 런던이라는 이 오색찬란한 도시에서 2년을 지내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어에 대한 나의 자세가 변했다. 철 없지만 영어에 대한 열정 만큼은 넘쳤던 어학 연수 시절을 시즌1으로 본다면, 10년이라는 시간을 가운데에 두고 이번 시즌2에서는 확실히 달라졌다.
런던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단순히 인구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이곳의 사람이 되어 함께 뒤섞여 살아가며 런던이라는 도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여러 종류의 억양과 영어를 듣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게 일상인 곳이다.
나이를 더 먹고 다시 찾아온 런던에서 나는 발음과 억양에 집착하던 습관을 잠시 접어두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과 더 제대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를 쓰는 생활을 계속 할 수록 내가 쓰는 영어가 얼마나 한국인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좁게는 내가 쓰는 단어, 표현, 문법부터, 넓게는 내가 지금 영어로 표현하고 있는 이 아이디어들까지, 한국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한국인이기에 할 수 있는 실수 혹은 표현 방식들이 아직 내 영어에서는 넘쳐나고 있다. 물론 이 점이 내가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에 큰 지장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깨달았다.
이곳 영국에서 나는 영국인 같은 영국식 영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영어를 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사실은 내 영어가 더 유창하고 덜 유창하고를 가늠하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왔고, 누구인지를 알려 주는 작지만 자랑스러운 그런 이름표라고. 물론 이 부분은 내가 영국이 아닌 다른 영어권 국가에서 지내더라도 큰 차이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잊지 말자. 영어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쓰이는 언어가 아니다.)
영국은 상상 이상으로 옛것과 새것이 뒤섞여 공존하는 곳이다. 옛 건물과 성당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도시에서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물결이 일렁이는 곳이다. 새롭고 다른 것을 받아 들이는 데에 거침이 없다.
이곳에서 그렇게 나는 배우고 있다. 내 영어가 영국식이든 미국식이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나의 영어를 하고 있고, 누구보다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이 언어를 사용해 나로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한국식 영어를 쓰는 런던에 사는 한국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