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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협아 Jan 21. 2020

관계에 대한 자만

너와 나 사이,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자만심이다. 나에 대한 자만심, 상대방에 대한 자만심, 그리고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한 도를 넘는 자신감. 물론 어디까지가 안전한 자신감이고 어디서부터가 자만심의 시작인지 객관적으로 잴 수 있는 척도는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터지지 않는 물집처럼 걸리적거리며 존재하는 이 불협화음의 시작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꼭 그 처음에는 자만심이라는 녀석이 정해준 방향으로 옮긴 첫 발자국이 있더란 말이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건 결국 두 사람 간의 물리적, 심리적 접근 허용 거리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규칙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 규칙과 그 영역 표시의 과정은 입 밖으로 내어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암묵적으로 소리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아주 고차원의 기술을 요하고는 하는데 어마어마하지만 빠질 수 없는 그 기술은 가끔 눈치라고 불리고, 맥락에 따라 배려라고 불리곤 한다.



사람에게도 동물적인 본능은 아직 남아있기에 기본적으로 본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 어디에서나 작용한다. 그 보호 욕구는 본인 주변으로 친 물리적 심리적 거리로 표현되고는 하는데 그 거리를 무시당하고 침범당할 경우 관계의 불협화음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그 불협화음의 모습은 두 사람의 현재 혹은 대외적인 관계에 따라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안에서 곪기만 하기도 한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양립은 개인이 생각하는 적정 거리가 비슷할 경우 큰 문제없이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데 그 암묵적인 적정 거리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일맥상통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오랜 시간 알고 지내는 친구나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에 대한 바람으로 가치관이 같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할 것을 꼽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어찌 지구 상의 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가치관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이것을 바닥에 흩뿌려진 답 없는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듯 완성해가는 이들이 또 바로 사람이란 이 멋진 존재란 말이지. 더욱이 이 퍼즐 놀이는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함께 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요리조리 상대방에 맞춰서 하지만 나 자신의 본질을 부수지 않는 한도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을 잘 끼워 맞춰야 한다. 상대방에게 나의 본질을 강요하면 상대방의 퍼즐 조각이 손상되는 것은 물론 그렇게 되면 완벽한 퍼즐 조각이 완성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대로 상대방의 모양에 맞추고자 나 자신을 마모시켜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나에게 맞추기를 바라는 욕심보다 내 주파수가 상대방에게 맞을 거라고 확신하는 자만심이 더 무서운 것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지레짐작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지레짐작의 시작 혹은 그 지레짐작의 과정조차 생략하는 자신감은 아마도 관계에 대한 익숙함에서 오는 자만심일 가능성이 높다. 나에게 괜찮은 것이 상대방에게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 내가 바라는 만큼 상대방도 그에 부응해 줄 거라는 기대감, 내가 다가가고자 하는 거리가 상대방의 영역 침범에 가까울지라도 우리 사이라면 문제없을 거라는 자신감. 이 모든 것이 착각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늘 괜찮았고, 우리의 사이 혹은 관계를 생각한다면 문제로 삼을 거리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이라는 것이 어찌 장담이 가능하고 확신이 가능한 것일까? 내 인생 하나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생각하는 바와 추구하는 가치관도 그와 함께 파도를 치고 있는 마당에 둘 이상이 모였을 때 이루어지는 그 조합은 훨씬 변화무쌍할 것이 틀림없다. 안 그래도 답 없이 복잡한 퍼즐 조각들이 시시각각으로 그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인연을 맺고 알고 지내는 모든 이들을 하나하나 다 맞추어 상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함께 이루어나가는 퍼즐 놀이의 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늘 긴장해야 한다. 조심해야 한다. 퍼즐 조각이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어느 한쪽은 상처 받거나 버림받는다. 그리고 그 퍼즐 조각에게 다시 기회가 돌아올 가능성은 많지 않다. 본인과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 대한 정립의 기준이 나 혼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상대방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나 자신과 상대방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양쪽 다 계속 변화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도 안 된다. 어제는 우리 사이에 괜찮던 것이 오늘은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자만의 일종이다.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에 이렇다 할 정도라는 것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신 같이 안다. 나를 향해 그 관계의 자만심을 부리는 상대방이 다가올 때의 위협감을. 하지만 반대로 나에게서 나오는 자만심과 그로 인한 상대방의 불편함은 감지하기 어렵다. 결국에는 균형이고, 서로가 함께 하는 노력이다.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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