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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협아 Jun 11. 2019

조금 더 주체성 있고 매너 있게 외국어 배우기

아직도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이 신기하신가요?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 건 몇 년 되었는데 런던으로 넘어오기 전 한국에서 영어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를 배우는 동안 반복해서 겪은 부분을 정리해서 글로 엮어 보려 한다. 외국어를 계속 배우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전공과 업도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되어버려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다.


문제의 발단은 2-3년 전 한국에서 들었던 독일어 수업이었던 것 같다. 본격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반,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교재, 새 선생님까지. 거기다 선생님은 한국인 한 분, 독일인 한 분 번갈아가며 수업을 하셨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다 열심히 하고 선생님도 나와 스타일이 잘 맞는 듯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진짜 문제는

이 독일인 선생님 수업 시간에 벌어진다.  

보기에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지내신 것 같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어느 정도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수업 중간중간에 잘 느껴졌다. 이제는 단순한 어휘나 문법 설명이 아니라 텍스트의 내용을 설명해야 할 상황이 오면, 가령 독일 고유의 문화를 설명할 때는 그걸 한국의 문화에서 동일한 예시를 골라내어 이해되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이 휴양지는 독일 사람들이 휴가 때 많이 가는 곳인데 가령 한국의 '제주'와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음식은 독일 젊은이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건데 아마 한국의 '김밥'이나 '짜장면'?"


저 설명은 물론 독일어로 하시고, 굵게 처리된 부분만 한국어로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참고로 수업은 100% 독일어로 진행된다.)

순간,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단 한 명 있었던 우크라이나 학생은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아, 직감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봐야 하는구나.


한국어를 조금만 잘 사용하는 외국인을 보면 우와- 하며 신기해하고 웃어대는 한국인의 모습을..



"저게 뭐가 어때서? 신기하면 놀랄 수 있고, 그 상황이 재미있으면 웃을 수도 있는 거지."


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 '상황'이라는 것이 과연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질 만한 상황인가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먼저 들이밀자면, 나는 저런 태도에 꽤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저런 상황에서 절대 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저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더 크게 보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한국 단어'를 사용한 거지 수많은 우리 앞에서 홀로 서있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기 위해 익숙지 않은 그 한국 단어들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 탓이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는데 남이 나를 웃기려는 의도를 가진 게 아닌데도 박장대소하며 매번 웃어대는 것을 매너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언제까지 외국인이 한국말을 능숙하게 (혹은 어눌하게라도) 하는 것이 흥미와 웃음을 자아내는 일이 되어야 하는 걸까? (신기하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물론 우리나라 언어가 아직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세계적으로 그 언어 사용률은 낮을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죽도록 영어를 (이제는 중국어 등등까지) 파고드는 것이 숙명이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어'는 [외국인이 배우는 언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또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을 보면 그들에게 우리가 영어 혹은 그들의 모국어를 써야지, 한국어로 대화하는 일은 상상조차 못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어를 쓰는 외국인이 얼마나 신기하면 티비 방송에서까지 그 옛날의 미수다, 혹은 최근의 비정상회담이라는 방송 콘텐츠까지 인기를 얻었을까도 싶다. 이제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외국인 패널들을 미디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보면, (영어를 예로 든다면) 결국 우리도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의 입장인데..



어떤 외국어든 상관없다. 아직은 서툴지만 열심히 배운 외국어로 그 나라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러면 그 말을 듣는 그 나라 사람은 [보통] 아래와 같은 반응을 해 줄 것이다.


1) 와, 너 우리말 어디서 배웠어? 잘한다~  

2) 수많은 실수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의사소통을 진행한다.

3) 물론 간혹 정말 운이 없으면 아, 저 동양인 뭐래는 거니 못 알아듣겠다. or 알아듣기는 힘든데 우리말을 하기는 하네, 신기하네..라는 (심히) 무례한 반응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집단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이 착각이 결국 외국인들의 저 3번의 행동과 어쩌면 크게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그냥 간단하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된다.


당신은 외국인 앞에서 환호와 박수를 받으려고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가 언제까지나 '한국어를 왜 배워???"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어에 대한 그런 무의식적인 무시는 결국 나아가서 모국어와 조국에 대한 열등감으로까지 이어지거나 아니면 반대로 거기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나 자신도 좀 더 크고 넓은 세상으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모국어가 아닌 생판 남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데 그 넓은 세상에 '한국어'는 왜 아직 들어가지를 못할까.





이곳 런던에서 사는 동안 한국에서 온 가수가 이곳의 유명 티비쇼는 다 접수하고, 그 큰 경기장에서 이틀에 걸쳐 전 세계 팬들을 불러 모았다는 게 허풍도 거짓도 아니었다는 걸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한국어로 된 노래를 들으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남녀노소 불문한 외국인들이 늘었고, 이곳 현지에서도 한국어 수업이 과거에 비해 정말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게 보인다. 오죽하면 함께 유학 중인 친구들끼리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한국어 강사 자격증부터 따야겠다는 얘기를 반농담으로 나누고 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인 것인데, 몇 년 전 저 독일어 수업에서의 경험은 그 안타까움이 커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이것도 다 우리나라 말이 외국어로 대접받아 가는 과정을 목격하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한국어를, (우리가 영어라는 놈에게 그러하듯)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배우는 만큼, 우리도 [외국어로 대접받고, 사람들이 배우고, 많은 비한국인들에게 쓰이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더 나아가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절이 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믿음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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