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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협아 Feb 17. 2020

서점에서 맡은 기분 좋은 한글 냄새

보그 병신체를 떠나보내고 한국어와 한글이 돌아왔다?

얼마 전에 요즘 인기가 많다는 서점을 다녀왔다. 아주 조용하고 주인장의 철학이 느껴지는 대로 책도 잘 진열된 그런 곳이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의 주류 관심사와 취향, 주인장의 고집이 잘 버무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멋들어진 서점 자체보다 더 내 눈길을 끌었던 건 서점 진열대의 전반적인 모습이었다. 도서에 대한 설명글이나 아예 책들의 표지 글자체 등에서 한글, 그리고 한국어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영어나 영어 알파벳, 외래어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사회에서 나고 자랐었다. 한국어 표현보다 영어 단어가, 한글로 된 간판보다 영어 철자가 가득한 빌딩이 더 멋있어 보이고 훌륭해 보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어서는 주말을 소위 ‘보그 병신체’ 가득한 잡지를 읽으며 미용실이나 카페에 앉아 보냈었다. 아주 엘레건트 하게.

그 동안 무분별한 외국어/외래어 남용을 막고 한국어와 한글 사용을 늘리자는 온갖 캠페인을 봐왔지만 사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정책 같은 걸로 밀어붙여봤자 큰 효과를 보기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


정부나 자치 단체에서 외래어를 대체한 이쁜 우리말을 아무리 제안해 봤자 소용이 없다. 사람들이 먼저 그것을 예쁘게 봐야 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사용하는 모습은 그렇게야 변화라는 과정을 겪는 것인데. 그러면 알아서 바뀌는 것인데.


약 3년 만에 찾은 서울의 어느 서점에서 조금은, 하지만 확실하게 달라진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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