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쓰는 말에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가
한국에서의 영어 티칭 & 학습 세계에 영국 영어가 등장해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단계인 것 같다. 단순히 영국 영어뿐 아니라 포쉬 악센트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도구로 등장한 걸 보니 말이다.
어렵다.
'진짜' 영국 영어라는 제목을 넣고 가는 이유야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매력 있는 콘텐츠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에게나, 가르치는 사람에게나 말이지.
하지만.
영국인들도 미국 영어의 세계화에 자신들의 말이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마당에 [진짜 영국 영어]라는 카테고리를 잡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를 구분해서 그 차이점을 배우는 것도 꽤 흥미로운 영어 수업이 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가보면 영국의 젊은이들도 우리가 흔히 [미국식 영어]라고 알고 있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다. 미국식 영어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영국이라고 그 언어적 침략(?)에 예외가 되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발음이나 표현에 있어서 굉장히 우아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걸로 여겨지는 '포쉬 악센트'가 정작 현지에서 동경'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고려한다면 마냥 동경하고 따라 해야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포쉬 악센트 = 진짜 영국 영어?
영국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악센트, 억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억양마다 지방의 정체성과 특성을 나타내는 꽤나 그럴듯하고 귀여운 이름도 붙어 있다.
그냥 궁금해졌다.
[포쉬 악센트]라는 타이틀이 아니면, 그 수많은 영국의 악센트들은 [진짜]가 아닌 게 되는 건가?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시던 구수한 지방 방언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진짜가 아닌 한국어로 다가가는 걸까?
악센트에 관한 고찰은 잠시 뒤로 하고, 저 프로그램의 취지가 좀 궁금하기는 하다.
저기에서 메인으로 내세울 것이 [포쉬 악센트]라면, 그 외에 다른 영어 프로그램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을까?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미국식 영어에 집중되어 있던 한국의 영어 교육 시장에 등장한 새롭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습자들의 욕구를 고려한 가장 영리한 선택이라는 것도 안다.
다만, '진짜'라는 정의를 내리는 대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나 자신도 아리송해서 이렇게 끄적여 본다. 하긴 나도 한 때 내 말투 안의 미국 영어의 흔적, 한 번 더 나아가서는 지방 사투리의 흔적으로 지워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적이 있기에 내가 매달렸던, 되고 싶었던 [진짜]의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 나는 지금 영국 영어를 쓰고 있는 건가?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 되었나?
그렇게 나는 영국인이 되었고, 서울 사람이 되었던가?
내가 그렇게 좇던 [진짜]가 되어 나는 온전한 내가 된 것인가?
덧. 지금 요 며칠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영드 Outlander를 열심히 보다 보니 그 안에서 등장하는 영어도 우리가 아는 하나의 영국 언어가 아니라는 점이 더 눈에 띄어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한 번 더 솔직해지자면 사실 주인공 제이미에 대한 사심이 더 많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