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스타 돋보기를 누르면 다양한 영상들이 나온다. 나 역시 내리 몇시간씩 영상들을 생각없이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사랑받던 강아지가 주인에게 무참하게 버려져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동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이 나온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나는 절대로 저런 견주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다 엄지 손가락을 한번 움직이면, 갑자기 웃기고 엉뚱한 강아지 영상이 나온다. 눈물도 다 닦지 못한 채 소리내어 깔깔 웃는다. 그순간 이런 나에게 흠칫 놀란다. 이런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과연 이게 옳은 ‘나’일까?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달로 폭력이나 잔인함을 수없이 노출시켜 개인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타인의 고통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다. 손택은 타인들의 괴로움이 많이 노출된다 해도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능력이 더 커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고자 하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하여 우리의 감정은 더 무뎌지고 이런 이미지나 영상들을 더 찾는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와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하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나 영상들이 일종의 ‘포르노그라피’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다시 말해, 타인의 고통이 과잉 공급화 되면서 우리는 이런 고통에 더 무감각해지고 반응 능력을 더 잃어간다.
그래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보았을때, 눈물 몇방울에 연민을 흘러보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비판적이고 진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고통을 휙휙 넘기지 않고 충분히 생각해보는 것도 연민에 무감각해지지 않는 좋은 방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