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경영 회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첫 창업, 3번 팀 분해, 3번 재개발

최근 제 주변에서 첫 창업을 시작한 얼리 단계의 창업가 분들이 보여요.

훌륭한 분들이 시작하셨어요. VC 업계에서, PO 업계에서, PE 업계에서 인정받는 분들이기에 자신있게 창업을 시작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도 충분히 자신감 있게 시작하실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역시나 연이어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도 바로바로 터지는 것 같아요. 심지어 제법 이름이 알려진 시드 투자 기관에서 참여했고, 투자받은 밸류도, 액수도 들어보니 정말 나쁘지 않게 첫 시작을 하셨어요.


앞으로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어떤 전략으로 시장에 침투하려고 하는지 머릿속으로 아주 충분한 계획이 있으신 것 같으니 정말 잘 될 것 같아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하지만 저도 창업해보니, 가설과 다르게 가는 일은 매우 빈번한 것 같아요. 스스로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구요. 초기에 본인의 힘만으로 하나의 팀을 만들어야 하고, 팀원들을 잘 이끌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또, 제품을 만든다고 끝이 아니라 잘 만들어서, 고객 숫자로 증명을 해야만 다음 투자를 받든 생존 할 수 있게 되니 정말 어려운 과정인 것 같아요.


팀빌딩 할 때 창업가의 이력, 투자기관의 평판, 우리가 바라보는 시장성과 제품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훌륭한 팀원들을 모셔오기 위해 노력하는데.. 마치 타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하나씩 모아가며, 지구를 정복하는 과정처럼 창업가 역시 훌륭한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팀원들을 모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제품 개발은 멈출 수 없구요.


초기일수록 팀은 불안정하고, 팀원들의 심적 상태도 들뜬 마음과 더불어 예민해지는게 보여요.

이에 대표가 조금만 예민하거나 흥분하는 또는 슬프거나 불안해하는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팀원들은 2배 3배 그 감정을 만들어내구요. 팀이 작을수록, 창업가가 특정 컴플렉스가 있을수록 (나이가 어린 편이거나, 나름 업계에서 평판이 있다거나, 아니면 경력이 별로 없다거나) 내부 정치 이슈도 보이기 더 빨리 보이는 것 같아요.


내부 정치를 할 싹이 보일 때 바로 그 팀원과 작별해야 나머지 팀과 제품이 생존할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저는 레슨언을 얻었어요. 그러나 스스로 어렵게 모은 인피니티 스톤처럼 귀한 팀원 한 명과 작별하자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나름 창업가이고 경영자인데, 팀원과 함께 잘 나아가면서, 팀원의 능력이 아웃풋 될 수 있도록 경영해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결국 팀은 무너지기 쉬워지는 것 같아요. 순식간에, 한순간의 일로 무너져버리기도 하구요. 공동 창업가가 있다면, 딱 그 정도 멤버만 남고, 나머지 팀원들은 작별하게 되는 일도 자주 생기구요.


' 팀이 2번 3번 와해돼 무너지는 것은 창업가의 역량이 부족한 것일까? '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절대 아니라고 답을 내렸어요. 창업을 하게 되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창업가는 팀이 2번 3번 혹은 4번까지 무너지고, 다시 팀빌딩 하는 것에 초연해질 필요가 있어보여요.

사실 아무도 창업가에게 팀이 몇 번 와해되고, 제품 다시 무너지고 개발하는 것에 대해 괜찮다고 말해주진 않았던 것 같아서 스스로 자책하는 일이 종종 보이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그랬구요)


사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팀원들에게 월급과 좋은 복지를 주려고 스타트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제품을 잘 만들어서 고객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잖아요. 초기에 팀원들이 갈려 들어가는 것은 팀원과 창업가 모두 인지하고 오로지 제품에만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창업가가 초기에는 (마음이 안좋지만)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이면서 제품이 잘 나오는데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에 팀이 계속해서 무너지더라도, 필요한 팀원들을 속속 채워가면서 제품 개발이 멈추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창업가의 초기 역량 같아요. 만약 팀이 전부 와해돼 한 번에 나가지더라도 초연하게 마음을 먹고 다시 새로운 팀원들을 찾아 개발을 해야 하는 것 같구요. 뭐 그렇게 개발이 일시적으로 몇 달 멈춰도 된다고 생각해요. 팀원들과 작별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아무리 능력이 있는 창업가더라도 그 정도는 각오하고 창업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품 개발도 마찬가지같구요. 아무리 좋은 제품이더라도, 초기에 팀이 몇 번이고 와해되면서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교체되기 시작하면 제품 개발을 인수인계받는 것보다 무너뜨리고 다시 제품을 만드는 선택을 보통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2번, 3번 팀이 무너지고 제품 개발도 2번 3번 다시 하게 되면 거의 1년의 시간은 공중분해하듯 사라져요.


다시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것 같아요.

10년 동안 하나의 일을 해야 하기에 초반 1년의 시간은 그렇게 허비된다고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끝까지 함께 하는 팀원들과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기 시작하고, 제품도 점차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렇다면. 창업가는 무엇을 챙겨야 할까요? 저도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1. 회사 돈이 끊기면 안 되는 것 같아요.

12개월 정도 팀과 제품이 무너질 것을 각오하고, 팀이 살아남을 수 있게 돈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창업가의 역량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에 투자금과 정부지원사업(예비창업패키지 → 초기창업패키지 → 시드투자 → TIPS 팁스 과제 / 청창사)을 갖고 돈을 계속해서 끌고 와야 해요. 3번의 팀 와해와 3번의 제품 다시 개발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창업가의 평판은 그렇게 무너질 수 있어요 (으악). 그러기에 그 정도 리스크는 당연하다는 듯 각오하고 초연하게 행동하며 일단 돈을 끌고 와야 해요. 돈이 끊기면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도 다시 도전할 수 없을 수 있어요..


2. 팀이 계속 무너져도, 제품이 무너지는 일은 최소화해야 해요.

초기에 팀은 무너질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제품도 팀 분해와 비례해 계속 같이 무너지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최소한 첫 번째 팀이 함께 할 때 제품은 아주 작게라도 출시하면 좋은 것 같아요. 아주 작은 기능이더라도, 일명 MLP (미니멈 러빙 프로덕트). 고객이 우리 제품을 꼭 쓸 수밖에 없는 기능 하나라도 출시해서 숫자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첫 번째 팀이 함께 '제품 기획 ~ 개발 ~ 출시 / 배포 ~ 유저 피드백 수용 ~ 업데이트'라는 사이클을 같이 돌아가야 와해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 같구요. 실제로 고객이 사용하는 숫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 팀원들끼리 정치적인 이유로 싸우거나 와해될 리스크는 하나씩 줄어들기도 하는 것 같구요. 그리고 그게 곧 창업가의 맨파워를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구요!


다시 말하면 창업가의 가설로 시작한 제품이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작더라도 숫자가 나온다면, 팀원들은 정말 창업가가 말한 비전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심어지기도 해요.


3. 기존 주주와 관계를 꼭 챙겨야 해요.

꼭 주주 업데이트를 쓰는 것을 추천해요. 주주 업데이트는 아주 극단적으로 투명하게 쓸 수록 좋아요. 매 달 제 일자에 (스스로 약속한 일자) 주주들에게 회사 상황을 공유해요. 팀원들이 나갔다면 어떤 포지션이 몇 달만에 나갔고, 왜 나간 건지, 그걸 통해 얻은 레슨런은 무엇인지. 제품 개발이 지금 이런 상황이고 언제 출시할 것 같은지, 출시가 연기됐다면 왜 연기된 건지, 우리의 자금은 이 정도 남았고, 얼마나 더 생존이 가능한지. 우리가 돈을 어디에 얼마큼을 지출한 것이고, 특별한 사항이 있다면 어떤 이유로 어떤 카테고리에 얼마를 쓰게 된 건지, 그리고 주주들에게 어떤 도움이 명확하게 필요한 것인지 공유와 요청을 한 번에 하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초기일수록 주주들을 아주 자주자주자주 만나면 좋아요. 주주들이 귀찮아해도 자주 만나서 도움을 구하고, 여쭤보고, 아픈 소리도 일부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신만만한 모습만 보여주다 자금이 떨어졌다, 팀이 무너졌다, 제품이 무너졌다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신뢰 있는 평판이 사라지더라구요..


그리고 주주관계에서 브릿지로 계속 돈을 자금 수혈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상황이 충분히 생기니, 주주관계를 더욱 끈끈하고 투명하게, 특히 얼리 단계일수록 투자기관과 같이 창업한다는 느낌의 템포로 호흡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기관 1-2개만 투자를 받는 것보다, 더 긴밀하게 호흡할 수 있는 개인 주주로 창업 선배님들을 모시면 더 좋다고 생각해요.


4.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차라리 법인을 만들지 않는 것도 방법같아요.

투자를 받고 3개월 안에는 제품을 출시해야 좋아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회사 보도자료도 끊기지 않고 계속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투자 기사가 보도되고 3개월 뒤에 제품 출시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뒤에 어느 정도 숫자 나온 3개월 후쯤에 다시 한번 숫자 나온 걸로 보도자료 내고.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스타트업은 자체적인 홍보가 필요한데, 제품이 출시하지 않으면 숫자를 만들 수 없고, 숫자를 만들지 못하면 계속 창업가의 평판으로 회사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건 한계가 있고 리스크도 커지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투자를 받기 전, 법인을 만들기 전, 내가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오기 전에 제품부터 일단 스텔스 모드로 만들고 (마음만 먹으면 팀원들도 충분히 퇴근 시간 이후에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할 수 있다.) 숫자가 어느 정도 나올 때 IR을 돌고, 투자 확정되면 퇴사와 동시에 법인 설립하고, 팀원들도 퇴사하고 조인하라고 하면 그게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해요.


창업가는 모든 리스크를 다 감수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큰 리스크를 내부적으로는 여러 개로 쪼개서 감수하려고 해야 하는 것 같고. 그게 습관이 되어야만 초기 얼리 단계의 생존 가능성도 커지는 것 같아요.


여기서 조심스럽게 더 이야기하자면

제품을 무턱대고 만들지 말고, 일단 제품 없이 랜딩페이지부터 만들고, 랜딩페이지에 사전가입 버튼만 두고 유저가 어느 정도 반응하는지 먼저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기껏 제품 다 만들었는데 '시장이 작네, 고객이 알고 보니 이걸 원한 게 아니었네, 비즈니스 모델이 없어서 돈을 받을 구멍이 없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주주들에게도, 팀원들에게도 진짜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더라구요.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거면 동아리를 하면 되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 거면 창업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얼리 단계의 창업가 분들을 정말 많이 존경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초기 창업가분들께 3번의 팀 와해, 3번의 제품 개발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니 초연하게 나아가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진짜 괜찮다, 자책하지 말고, 본인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계속 끝까지 밀고 나가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아마 창업 전에 투자받고도 팀 무너지고, 제품 다시 만드는 얼리 단계의 창업가를 보면서 비웃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본인이 창업가인 만큼 다른 얼리 단계의 창업가를 서로 존경하면서 끝까지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돈만 끊기지만 않으면 뭐든 해낼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부끄럽지만 고객에게 부탁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