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그건 단지 해외에서의 기회가 좋아 보여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남아 싸울 이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했다.
나는 문신으로 태극기를 새길만큼,
나는 병역이 면제됨에도 자원입대를 택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국방의 의무는 책임이라고 믿었고,
이 나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졌다.
그리고, 나의 능력과 열정이 이 사회에 선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지금, 점점 흔들리고 있다.
한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인구와 규제, 정책과 문화를 봐야 한다.
지금의 한국은,
줄어드는 출산율만큼이나
기회의 절벽도 가팔라지고 있다.
생산가능 인구는 급감하고,
청년층은 줄줄이 탈출을 준비하고,
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타협하거나 무기력해진다.
시장이 줄어드는데 규제는 줄지 않고,
미래가 막막한데 정책은 오히려 더 불확실해진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
성공보다 ‘착함’을 증명해야만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구조.
투자를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해도
“부자 되려는 의도가 불편하다”는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곳.
결혼은 꿈이 아니라 두려움이 되었고,
아이를 낳는 건 축복이 아니라 책임과 비용의 공포가 되었다.
그러니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이 땅에서의 삶 자체를 유보하거나, 포기하거나, 떠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창업을 더 잘하기 위해 미국, 두바이, 싱가포르를 고민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이런 말은 불편하게 들릴 것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어때서?”
“그래도 너 잘 됐잖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나 하나의 성공’이 이 나라의 시스템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정말 운이 좋게,
정말 치열하게 싸워야만 겨우 버텨낸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한국에서 창업하고 일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내가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보다 더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더 슬픈 건,
이 나라의 ‘어른들’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은 나가고, 기업은 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부자는 숨고, 투자는 줄고, 출산은 멈추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희망적인 말’만 반복한다.
하지만 희망은 말로 만들 수 없다.
희망은 ‘준비된 변화’에서만 자란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는,
그 희망을 만들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아직 이 나라를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마음은 분명하다.
“이대로면, 나는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남아서 싸우는 것도 용기지만,
떠나서 더 나은 답을 찾는 것도 책임일 수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불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 아니다.
진짜 위기는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믿는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어야
변화도 가능하다고.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변화의 문턱 앞에서
떠날 용기와 남을 책임 사이에서
가장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