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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가능성 있는 나’를 팔던 시절

어릴 때는 막연히 “이 정도 나이쯤엔 뭔가 이루어져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것 하나 선명하지 않다. 이루어진 것도 많지만, 이루고 싶은 건 더 많다.

그래서 여전히 모자라고 불안하다.


요즘은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 시대에 너무 늦게 태어난 건 아닐까. 혹은, 너무 일찍 달려온 건 아닐까.


웹3는 분명 돈이 된다.

트렌드를 타고, 돈의 흐름을 타고, 감각적으로 짧게 치고 빠지는 생존 게임처럼 보인다.

그 안에선 도파민과 욕망만 남아 있다.

정작 내가 찾고 싶은 건 돈이 아니라, ‘증명’이다.

‘내가 만든 무언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가’에 대한, 조금은 고집스러운 가치의 증명.


웹3의 구조에선 그런 증명을 찾기 어렵다.

무언가를 오래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타고 흘러야 하는 세상이니까.

빨리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남는 곳에서,

천천히 깊게 파고들고 싶은 나는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웹2에서 증명하고 싶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에 실망하고, 또다시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지속적인 플랫폼에서.

기술보다 인간의 서사와 관계가 살아 있는 공간에서.


하지만, 이 시대는 웹2의 끝자락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대한 플랫폼은 이미 만들어졌고, 틈은 점점 줄어든다.

치고 올라오는 어린 창업자들, 날렵하고 자유롭고, 간혹 나보다도 냉철한 아이들이

스물셋, 스물넷에 내가 몰랐던 걸 알고 있다.

젊다는 건 더 이상 무기가 아니다.


이제는 어설프게 ‘가능성 있는 나’를 팔던 시절이 지났다.

결과를 말해야 하는 나이.

증명해야 할 타이밍이다.

이제는 내가 만들어온 것보다 앞으로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더 간절해지고, 더 무거워진다.


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이쯤에서 잠시 멈추고, ‘안주하는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닐까?


자꾸 더 나가려 하고, 더 큰 걸 원하고, 더 깊은 증명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이룬 것에 대해 스스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용기는 왜 이리 어렵나.


‘지금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믿고 버티는 것도,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만족하는 것도

사실은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증명과 안주 사이,

욕망과 가치 사이,

도파민과 진정성 사이에서

매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질문이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

“아직은, 더 갈 수 있어. 하지만 멈춰도 괜찮아.”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이 말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27살, 애매한 나이.

하지만 그 애매함 속에

우리의 진짜 모습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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