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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경영 회고

AI 의 혁신은 큰 부자가 될 길을 막는다.

요즘 들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AI의 혁신이 정말 모두에게 기회일까?


OpenAI, Google 같은 거대 기술기업들이 새로운 기능을 발표할 때마다, 나는 그 아래에서 증발하듯 사라지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을 본다. ‘비슷한 기능’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투자 기회를 잃고, 사용자를 잃고, 팀은 해체된다.


AI 산업은 본질적으로 자본집약적이다. 수천억 원대의 컴퓨팅 리소스와 수백 명의 인력, 방대한 데이터 파이프라인 없이는 대기업이 만든 모델의 정밀도와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그래서 작은 팀은 ‘만들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들어도 생존이 위태로운’ 기묘한 압박 속에 놓인다. 혁신을 꿈꾸며 뛰어든 시장에서 가장 먼저 혁신의 무덤이 된다.


지금의 AI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속도의 전쟁이다. 어떤 스타트업이 새로운 제품을 내놔도, 몇 달 뒤면 OpenAI의 업데이트 하나로 사라진다. 3년 전만 해도 이미지 생성 AI 회사들이 투자를 받던 시절이 있었지만, ChatGPT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모든 게 사라졌다. 코딩 AI 서비스들도 마찬가지다. ChatGPT가 코드를 쓰기 시작한 순간, 수년간 축적된 기술력은 한순간에 무력해졌다. 결국 대기업은 ‘기술의 속도’를 무기 삼아 아이디어의 생명 주기를 지배한다. 스타트업은 더 빨리 만들어도, ChatGPT가 따라 만들면 결국 사라진다. 지금의 생태계는 ‘속도’가 아니라 ‘흡수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건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플랫폼 종속화’의 또 다른 형태다. 예전에는 대기업이 플랫폼을 만들고 스타트업이 그 위에서 성장했지만, 이제는 대기업이 플랫폼이자 제품이며 동시에 생태계 전체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데이터를 쥐고, 모델을 쥐고, 인프라를 쥐었다. 남은 건 사용자를 향한 감성적 접점뿐인데, 그마저도 매번 플랫폼 업데이트에 덮인다. 더 이상 스타트업은 틈새 기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은 대기업의 ‘업데이트 주기’가 곧 시장의 생명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샘 알트먼은 “AI가 개인에게 권한을 돌려줄 것”이라 말한다. 누구나 1인 창업가가 될 수 있고, AI를 통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AI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창의적 노동을 빠르게 대체한다. 기술의 평등은 창의의 평준화를 낳았다. 모두가 비슷한 도구를 쓰는 세상에서는, 아이디어보다 타이밍이 중요해지고, 타이밍보다 더 강력한 것은 결국 자본이다. ‘누가 더 빨리 만들었느냐’보다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새로운 생존의 기준이 되었다.


이제는 ‘스타트업이 1조 원 기업을 도전하는 시대’가 아니라, ‘1명이 월 1,000만 원을 벌며 조용히 생존하는 시대’다.


2007년 모바일 시대에는 앱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2025년의 AI는 다르다. 이번엔 대기업이 모든 기능을 직접 만든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 코드. 인간의 창의 영역이 그들의 모델 안으로 통합된다. 스타트업이 몇 년을 들여 만들어온 기능은 다음 분기 OpenAI 릴리즈 노트 한 줄로 사라진다. 인간의 상상력이 코드화되고, 코드는 곧바로 플랫폼에 흡수된다. 이건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창의의 독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기능(function)’이 아니라 ‘맥락(context)’을 만들어야 한다. AI는 기능을 복제하지만, 맥락을 복제하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공동체의 감정, 철학, 브랜드의 정체성과 같은 비가시적 가치들이 마지막 남은 영역이다. 대기업이 기술의 정점을 향해 갈수록, 작은 스타트업은 인간적인 깊이로 회귀해야 한다. 기술의 정밀도가 아닌 관계의 진정성이, 속도의 효율이 아닌 맥락의 울림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GPT가 코드를 더 잘 짜도 사람의 영혼을 설득할 수 없고, GPT가 더 정확한 답을 내놔도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사를 대신 써줄 수 없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것은 정답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은 의미다.


AI는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파르게 만든다. 거대 자본은 더 강해지고, 작은 팀은 더 섬세해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는다. 진짜 혁신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대기업의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는 있지만, 인간의 서사가 세상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서사를 붙잡고 있는 이들, 작지만 진심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창업가들이 결국 다음 시대를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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