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로 만들어내는 숫자와 스토리는 듣다보면 갸우뚱 할 때가 있다. 인간의 욕망처럼 허상과 허세가 나타나는 이유와 연관이 있다. 숫자를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숫자를 실제로 찍는 과정은 훨씬 더 치밀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 단위 경제성, 비용 구조, 리텐션 곡선, 제품 사용성, 전환율의 병목 같은 요소들이 모두 작동해야 비로소 숫자가 나온다. 너무 어렵다. 정면돌파해보지만 숫자내기란 참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숫자를 쉽게 말하는 사람보다 숫자가 왜 안 나오는지 정확히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훨씬 신뢰하게 된다.
실제로 이익을 올리고 거래액을 키우는 일은 단순히 판매를 더 한다는 수준이 아니다. 제품 구조를 리빌드하고, 고객이 이탈하는 지점을 찾아 수정하고, 비용 대비 효율이 나쁜 기능과 프로세스를 과감히 버리고, 고객 세그먼트별 행동 패턴을 이해해 적재적소의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직원 수를 줄여 효율을 만들겠다는 것도 조직 심리, 커뮤니케이션 비용, 기능별 책임 분배까지 고려한 재설계의 문제이지 단순 감축이 아니다. 결국 창업은 시스템 구축의 연속이고, 그 시스템을 매달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창업판에서 인맥과 연결만으로 일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물론 성장 과정에서 귀인이 등장하는 순간은 존재한다. 하지만 외부 누군가의 연결은 가속력이 될 수 있을 뿐, 기초 체력 자체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연결이 매출을 보장하지도 않고, 소개가 성장을 대체하지도 않는다. 결국 고객의 선택을 바꾸는 것은 창업자의 실행 속도와 제품의 편리함이며, 스타트업의 핵심 경쟁력은 언제나 고객 행동을 바꾸는 능력인 것 같다.
나는 창업을 하며 깨닫는 것들이 참 많다. 고객은 경쟁사가 누군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이 경험이 더 쉬운가, 더 빠른가, 더 안정적인가만 보는 것 같다. 그 작은 차이를 매일 개선하는 사람에게 숫자가 쌓인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언론은 성과를 키워 말하지만, 실제 성장은 조용히 진행되고, 숫자는 어느 날 갑자기 커진다. 숫자 앞에서는 과장이 아니라 정확성이 경쟁력이 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과장된 목표를 세우고 3년, 5년, 7년 안에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시장의 복잡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오는 말처럼 들린다. (내가 그랬으니 안다.) 성장은 확률 게임이 아니라 구조 게임이고, 구조 게임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높은 밸류를 경험했지만 그 숫자가 내 실력만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운과 시장 타이밍, 자본 환경이 있었고, 그 결과가 현금 흐름으로 완전히 연결된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밸류에이션을 ‘기대치’로만 보고, 자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싶다.
또 하나 깨달은 점은, 첫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것이 생각한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열정은 많아도 실패를 관리할 경험이 없고, 시스템을 만들기보다 브랜드를 꾸미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투자금이 실제 성과가 아니라 평판 관리에 쓰이고, 외형을 키우다 시장의 반격을 맞고 무너지는 사례를 수없이 보았다. 창업은 멋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생존능력으로 하는 것이고, 이 능력은 시간을 겪어야 생긴다. (그래서 첫 투자 이후 혼자 동 떨어져있지말고 동료들과 선배들 옆에서 브레이크를 서로 걸어주며 걸어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숫자를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숫자가 왜 만들어지는지·왜 안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할 줄 아는 사람, 시장의 변수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고 싶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창업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겸허함·집요함·데이터 기반 실행력인 것을 또 느낀다. 조용히 싸우는 창업자만이 끝까지 살아남고, 결국 승리를 가져가는 만큼, 더 본질에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