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경영 회고

이미 잘 걸으면서 왜 걷는 방법을 생각해

이미 걷는 법을 익힌 사람은 걷는 법을 떠올리는 순간 흔들린다. 발은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속도는 적절한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몸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 장면은 인간 삶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닮아 있다. 우리는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것들을 몸으로 익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든 것에 이유를 요구한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지금도 움직여야 하는지, 왜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깊어질수록 삶은 오히려 더딘 걸음을 내딛는다.


그래서 ‘열심히 한다’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미덕이기보다 자기 검열의 언어가 되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일 것 같고, 노력하지 않으면 가치 없는 존재가 될 것 같다는 불안이 그 말 안에 숨어 있다. 우리는 열심히 살기 위해 이유를 붙이고, 이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남는다. 만약 그 모든 이유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정말로 멈춰 서게 될까.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곧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뜻일까.


어쩌면 이 질문은 노력과 존재를 혼동한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노력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왔고, 움직여야만 의미가 생긴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이미 숨 쉬고 있고, 이미 걷고 있고, 이미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상태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이유의 결과라기보다, 이유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힘에 가깝다.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앞으로 나아가듯, 삶에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층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멍게의 삶은 이 지점에서 인간에게 불편한 거울이 된다. 멍게는 유체 시절, 올챙이처럼 바닷속을 헤엄치며 주변을 탐색한다. 그러다 딱딱한 표면을 발견하면 거기에 몸을 고정하고, 자신의 뇌와 신경계를 녹여 먹는다. 더 이상 판단할 필요도, 선택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후의 생은 외부 세계에 반응하지 않아도 유지된다. 생존에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버리는,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삶의 형태다.


인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생각하지 않는 삶, 선택하지 않는 삶, 더 이상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삶은 곧 퇴행이자 실패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멍게처럼 산다는 표현을 모욕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정작 그 비난 속에는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우리는 왜 반드시 끝까지 생각해야 하는가. 왜 멈춤은 항상 패배가 되는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삶만이 정말로 더 고귀한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멍게와 반대편에서 비슷한 선택을 반복한다. 우리는 뇌를 녹여 먹지는 않지만, 생각을 멈추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감각은 무뎌지고, 질문은 목적을 잃은 채 반복된다. 움직이고는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점점 흐릿해진다. 멍게는 한 자리에 붙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지만, 인간은 계속 움직이면서도 어쩌면 이미 멈춰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걷는 법을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잘 걷는다. 삶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이 사라졌을 때, 오히려 더 깊이 살아가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이어지는 하루, 증명하지 않아도 지속되는 움직임. 그것은 멍게처럼 생각을 포기한 상태도 아니고, 사회가 요구하는 ‘열심히’에 자신을 맞춘 상태도 아니다.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이유를 요구하며 살아가는가. 이유가 사라질 때 드러나는 삶의 본능을 신뢰할 수는 없는가. 멈춤과 움직임, 사유와 본능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절대화하지 않고, 이미 몸이 알고 있는 리듬을 회복하는 것. 어쩌면 철학은 더 열심히 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이미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하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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