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술이 발전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기술이 아니라 조건이 바뀐 시대를 살고 있다.
AI는 더 빨라졌고, 더 정확해졌고, 더 많은 일을 대신해 준다.
그 결과, 기업은 더 효율적이 되었고, 사회는 더 생산적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 불안해졌다.
성과는 늘어났는데,
자리는 줄어들고,
속도는 빨라졌는데,
우리는 따라가고 있다는 확신을 점점 잃어간다.
이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조건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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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제
생각하지 않아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검색하면 나오고,
물어보면 설명해 주고,
요청하면 정리해 준다.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사유의 시간은 줄어들었다.
생각은 느린 일이다.
틀릴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고,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생각하기보다
확인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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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배우고 있을까
정보는 넘치지만,
이해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본 것’을 ‘안 것’으로 착각하고,
‘들은 것’을 ‘이해한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배움은
결과를 아는 것이 아니라,
연결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AI는 결과를 더 빠르게 보여주지만,
그 결과를 내 안에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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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상상은 원래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했고,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상상하기 전에 먼저 본다.
이미 만들어진 결과를 보고,
그 안에서 조금씩 조합한다.
창조는 점점
위험한 상상보다
안전한 조합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상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떠올리는 일이다.
AI는 가능성을 계산하지만,
필요를 느끼지는 못한다.
필요를 느끼는 존재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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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판단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가치를 선택하는 일이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인간은 단순히 똑똑한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느끼는 존재라는 뜻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넘어서
무엇이 의미 있는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기술이 아니라
안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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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주도하고 있을까
예전에는
정해진 답을 잘 따르는 능력이 중요했다.
지금은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기술은 평준화되었고,
만드는 능력보다
방향을 정하는 능력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
주도성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다.
정답이 없을 때도
멈추지 않고 선택하는 힘.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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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즐기며 만들고 있을까
성과는 비교를 낳고,
속도는 과정을 지운다.
우리는 점점
결과는 빨리 얻지만,
만드는 기쁨은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완성된 순간보다
완성되지 않은 시간을 견디는 존재일 때
가장 인간답다.
장인정신이란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태도다.
그 안에
시간이 남고,
정성이 남고,
흔적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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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AI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대신할 것이다.
하지만 사고를 대신해 주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는
생각하려는 불편함을 지켜야 하고,
질문하려는 용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편리함보다
주체성을 선택하는 태도.
속도보다
방향을 선택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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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어떤 선택을 했는가
나 역시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이다.
AI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시대에서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돈이 되는 것,
빠르게 성장하는 것,
효율적인 것.
그 모든 선택지가 있었지만
나는 사람을 향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성경 앱을 만들고 있다.
정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다시 스스로 묻게 하기 위해서.
AI로 사고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돕는 도구를 만들고 싶었다.
이 선택은 가장 효율적인 선택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정직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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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AI는 더 빨라질 것이다.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다.
AI는 더 많은 일을 대신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남는 것은
여전히 선택이다.
AI는 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삶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AI는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책임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생각해야 하고,
질문해야 하고,
선택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바로 이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닮은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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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후에도,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당신은
어떤 인간으로 남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