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당부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지는 어언 이십여 년이 넘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했던 대학시절에는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과 복잡한 컨셉을 설명하기 위해 누런 크래프트지로 만들어진 손바닥만 한 수첩과 제도용 만년필을 항상 손에 쥐고 다녔더랬지요.
취직 후 출근하자마자 화분에 물을 주고 본부장님의 책상을 닦는 일부터 시작해서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던 막내사원 시절, 주어진 업무와 기한을 까먹지 않으려고 To-do list를 작성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회사에서 지급해 주던 큼지막한 다이어리에 3색 볼펜으로 번호를 매겨가며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었습니다.
지금은 나이를 먹고 너무나도 많아진 생각과 점점 더 심해지는 건망증을 위해 수시로 휴대폰과 노트북의 원노트앱을 켜고 글을 적습니다. 그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어떠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어요.
불현듯 현재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기계적으로 메모하는 습관에서 앞으로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좀 더 나은 글쓰기를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명 없이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그림들이 가득했던 20대의 수첩에서 번호와 빨간 줄, 별표로 채워진 30대의 다이어리를 거쳐 업무보고, 장바구니, 가계부, 육아수첩, 재테크, 스케줄, 스크랩 등 온갖 카테고리로 가득한 40대의 원노트앱에 정착한 지금까지 저 혼자만 쓰고 보는 짧게 함축된 독백이었다면, 이제는 여태껏 쓰지 않았던 머릿속의 철학과 주장, 경험담과 일기를 주절주절 방백처럼 풀어내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말이죠.
40대를 예전에는 불혹(不惑)이라 불렀다 합니다. 세상일에 흔들림없이 판단을 흐리지 않을 나이라는 의미인데 불혹은 적어도 저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것만 같아요. 여전히 세상일에 관심이 가득하고 흔들리고 흐릿한게 저란 사람이에요. 더 이상 혼자만의 To-do list와 독백으로는 불혹의 근처에도 갈 수 없을것만 같아요.
생각을 적고 정리하고 말하고 듣고 다시 쓰면서 그 경지에 다다른 40대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쉽게 판단하고, 옳다고 고집하고,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고싶지 않습니다. 유연하고, 비판하고, 사유하는 불혹의 경지를 지나 하늘의 경지를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을 향해 이 공간에 다짐의 글을 쓰며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