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 서서

나만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를 찾아서

by 김민중

산을 오르다 보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갈림길의 이정표에는 중간에 거쳐가는 지점까지의 거리 또는 남은 높이가 나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전에 봤던 갈림길보다 가짓수는 줄어들고 거리와 높이는 줄어 얼마 남지 않게 됩니다.


저는 지금 산 중턱 어디쯤의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첫 시작은 제법 규모가 있는 중견 설계사무소였습니다. 대학생활 내내 꼬르뷔제(Le Corbuisier)가 어쩌고 미스 데로에(Miss van de rohe)가 저쩌고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이렇고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저렇고 하며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좇아 한길만 팠고 대학졸업전 그 당시 나름 유명했던 건축가의 사무실에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그때 당시 내 머릿속 건축가의 이미지는 예술가에 가까웠습니다. 자신의 철학과 미적 감각을 뽐내며 엔지니어의 지식과 노하우를 겸비하고 도시의 맥락과 공동체의 삶을 디자인하는 만능 엔터테이너. 그러나 현실은 갑, 을, 병, 정으로 이어지는 용역관계의 '정'쯤 되는 위치에 있는 용역회사 직원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정확히 1년이 걸렸습니다.


"이 길이 아닌가벼......"


서울 중랑구에서 영등포구 사무실까지 출근길은 지하철로 꼬박 1시간이 걸렸고 사무실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은 오전 7시 40분. 전날 퇴근한 시간은 오후 10시 30분. 그렇게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난 후 회사 옥상에서 믹스커피 한 모금에 담배를 연거푸 태우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2011년 목동 설계사무실 옥상에는 제 첫 번째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대학교 선배의 소개로 중견그룹사의 부동산 개발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설계밖에 모르던 때라 '부동산'하면 '복덕방'을 가장 먼저 떠올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선배의 제안 전화를 받았을 때가 마침 설계사무실 입사 동기로부터 자기는 부동산에 뜻이 있어 영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채 몇 시간 안 되었을 때였어요. 선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 저 갈래요. 무조건 갈래요." 하고는 그 주에 면접을 보고 다음 달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일사천리로 시작된 두 번째 길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발회사라는 타이틀이었지만 제가 맡은 주 업무는 백화점과 쇼핑센터를 개발하고 그 안에 있는 매장들의 입점과 퇴점, 영업을 관리하는 상업시설 PM(Retail Property Management)에 가까웠습니다. 갑, 을, 병, 정의 '정'에서 '병' 쯤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저는 그 사이 부동산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하였고 부동산 업계가 단순히 '복덕방'만 있는 것이 아닌 수요와 공급, 자본과 투자, 건설과 운용, 주거와 상업, 법과 기술이 뒤섞인 복잡한 시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업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름 만족스러운 회사생활을 하던 중 영국에 부동산학 유학을 갔다던 설계사무실 동기를 만났습니다. 서로 반갑게 근황을 묻던 중 그 동기가 유학 후 Savills라는 영국계 부동산 서비스 회사에서 일한다는 걸 듣게 되었고 외국계 회사에 대한 묘한 동경과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날 밤 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았던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이 길은 어디로 연결되는 거고, 끝은 어디지?"


그날 밤 저는 다시 갈림길에 서있었고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캐나다계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서는 돈 되는 일은 다했습니다. 말이 거창해서 "캐나다", "외국계", "컨설팅"이지 사무실에서 영어를 쓴 적은 4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고 콜센터처럼 다닥다닥 붙은 좁은 책상에 앉아 시끌벅적 통화하기에 바빴으며, 처우는 계약직과 다름없는 환경에서 개발, 매매, 임대, 투자, 자문 등 온갖 서비스와 아파트, 오피스텔, 상가, 백화점, 쇼핑센터, 로드샵, 호텔, 모텔, 병원, 물류창고, 대지, 농지 등등 발을 걸치지 않은 물건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광범위한 업무와 서비스를 다루다 보니 시장을 보는 눈은 한층 성장할 수 있었지만 컨설팅 회사의 구조로 인해 남의 배만 불리는 일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시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갈림길에는 참 많은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팀 내에서 유일하게 평가를 좋게 받고 있던 때라 이직을 이야기했을 때 인사팀으로부터 이직하려는 회사에서 제시한 연봉을 맞춰줄테니 남아달라는 역제안이 왔었고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돈보다 시장에서의 평판을 꾀나 중요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누가 얼마나 알아준다고, 그게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큰 의미라고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3번의 갈림길을 통해 선택한 길에 현재의 제가 있습니다. 부동산 자산운용사와 시행사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작은 개발회사에서 개발팀장 역할로 5년 동안 오피스,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호텔, 지식산업센터 등 다양한 Product 개발의 A to Z를 경험했고 또 현재 진행 중입니다. 시장에서 공급자의 역할로 최전선에 서있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고 거의 모든 형태의 Product를 경험해 봤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현재의 갈림길에 서기까지 17년간 지나온 길을 간략히 되짚어 보면서, 각각의 갈림길에 선 그때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혹은 하게 될 누군가를 위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와 남들은 잘하지 않는 비하인드스토리를 연재처럼 풀어내려 합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라떼는......"이 될 수도 있고 "커리어 패스 컨설팅"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말이에요. 이렇게 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이 지금 서있는 갈림길에서 또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두고 최대한 꾸밈없이, 숨김없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상으로 자기소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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