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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주 Jan 17. 2024

연습하기 딱 좋은 파도

ep.9

파도가 약해서 라인업이 성큼 앞으로 옮겨졌다. 서핑 고수들에게는 안 좋은 파도였지만, 나같은 초보에게는 연습하기 딱 좋은 파도였다. 파도가 클 때는 라인업까지 가는 게 무리라 거품 파도밖에 탈 수 없었는데 오늘처럼 파도가 작은 날에는 경사면의 파도를 타는 게 가능했다. 거품 파도는 패들링을 열심히 안 해도 뒤에서 확 밀어주지만, 경사면의 깨끗한 파도는 패들링으로 속도를 맞춰줘야 해서 초반에는 파도를 놓치기 일쑤였다.


파도를 어떻게 보는 건지, 언제 패들링을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고 있으니 같이 지내는 서핑샵 사장님들이 옆에서 타이밍을 알려주셨다.


“민주야 보드 돌려!”


“파도 보면서, 계속 패들 해!”


“왼쪽 보면서 가!”


덕분에 정말 재밌게 파도를 많이 잡아 탈 수 있었다. 항상 앞으로만 가는 서핑을 하다가 사이드로 나름 길게 타보기도 했다. 팔에 힘이 빠져서 패들링을 하는 게 벅찼지만 밖으로 나가 쉬고 싶지는 않았다. 옆에서 잘 탔다고 칭찬도 해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는 애플이 아항가마 비치에 데려가줬다. 이 친구가 날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다. 넌 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데, 뭐라고 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바다를 보면서 얘기 하다가 집에 와서 30분간 기절을 한 것처럼 잤다. 오후 서핑을 가서는 애플과 같이 바다로 들어가 애플의 도움을 받으며 서핑을 했다. 그런데 애플이 해변으로 나가자마자 강습을 하고 있던 스리랑카인이 ‘You are so beautiful’라고 말하며 씨익 웃어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이곳에서만큼은 내 얼굴이 먹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인데, 스리랑카에 와서 살면 인생이 굉장히 즐겁겠는걸.


낮에 집 앞 마당에 돌아다니는 도마뱀을 봤는데 크기가 새끼 악어만했다. 도로에 소들도 심심찮게 지나다니고, 원숭이에 박쥐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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