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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27. 2023

씨마크

건식 사우나, 습식 사우나

사우나가 이렇게 좋은 거였나? 이번에 처음 느꼈습니다. 이제 서른 중반을 넘어가다보니.

숨 막히고 너무 뜨겁고 재미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우나.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입을 닫고 코로 들이마시며 호흡하는 습식 사우나, 조용하고 컴컴하고 따뜻한 건식 사우나, 12월의 노천탕, 12월의 풍욕. 노천탕에서는 몸을 푹 담갔다가 반만 담그고 멍하니 앉았다가 다리만 담그고 앉아 물을 계속 마셔주면서, 그러다 모자가 달린 얇은 회색 타올 가운을 입고 바다가 보이는, 소나무와 갈대가 있는 나무 데크로 나가 나무로 된 비치 체어에 몸을 누이고 파도 소리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겁니다.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가더라도 사우나와 온탕에 뜨끈하게 데워진 몸은 시원하게 느낍니다. 그늘인데도 잠에 들 수도 있을 것처럼 몸이 기분 좋을 정도로만 서늘하고 발가락 사이로, 다리 사이로 맨 얼굴로 후드 속 머리칼 사이로 바람이 스밉니다. 가만히 미소가 지어집니다.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쌓여있는 얇은 얼음을 퍼서 얼굴과 다리를 문지르고 그러다 온 몸을 문지르고 그러다 냉탕에도 들어갑니다. 냉탕에 들어가고자 마음 먹은 건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입니다. 


눈을 떴을 때 긴 해안선을 따라 보이는 너른 바다 위 광활한 하늘이 붉고 맑은 진한 핑크빛으로 물들어있었습니다. 해서 심장 마비 위험을 무릅쓰고 수영복으로 후다닥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가운을 벗고 서둘러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우리 앞에 온통 펼쳐져 있는 해 뜨기 전 새벽의 강릉 바다와 하늘을 향해 헤엄쳐 나아갔습니다. 그리곤 짙은 핑크빛 하늘이 예고했던대로 말갛고 빨간, 투명하고 커다랗고 둥그런 해가 지평선 위로 천천히,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씨마크로 신혼 여행을 왔을 때도 우리는 이렇게 새벽에 수영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때 떠오르는 해를 향해 헤엄치면서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나? 내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임을 예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또 한번 씨마크는 완벽하고 깨끗하고 근사한, 너른 하늘과 바다 위로 떠오르는 말간 일출을 보여줬습니다. 거의 이 정도면 일출은 보장되어 있는 게 아닌가. 더 없이 쾌적한 잠과 군더더기 없는 커다란 화장실과 좋은 냄새와 촉감으로 탄생한 밤 끝에 이러한 새벽을. 


우리는 하늘색 중고 피아트를, 우리의 첫 차를 타고 첫 여행지로 씨마크에 온 거였거든요. 

나는 최근에 꼭 갖고 말겠다고 생각한 카키 빛깔과 광택 없이 부들부들한 촉감의, car 코트 모양 트렌치 코트를 드디어 손에 넣었거든요. 

내 기분은 이렇게 요동칩니다. 

우리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쉽게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해합니다. 결점과 비밀은 우리 둘만 알지만 그럼에도 어린애처럼.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도 또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하는 것처럼 인생이 짧아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서, 죽을 때 우리가 함께일 수 없어서 몰래 서글프고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적고 조용하면서 근사한 사우나를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왜 돈 많은 사람들이 집에 건식 사우나를 만드는지 이번에야말로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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