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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Dec 21. 2023

생은 다른 곳에

한갓 꿈. 

모든 게 더딥니다. 내가 뭘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은반지와 강아지를 잃고 말았습니다. 개와 사물의 무게를 같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뼈가 시리고 가슴 저미는 듯해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상처를 생각했을 때 함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다시는 그런 소중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벌써 생각합니다. 때문에 나는 지레 겁먹고 빠르게 노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때로. 


스스로가 너무 어리거나 지나치게 빠르게 늙어버렸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생각을 멈출 수 없어 끝없이 괴로울 뿐이라는 생각이 들거나 혹은 홀로 있을 때, 잠잠한 순간 시간이 숨 멎게 생생하게 느껴지며 고요하고 진정한 행복감이 밀려올 때면 누군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누군가 남겨질 거라던가 내가 남겨질 게 두렵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차피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듯이 나로 태어난 것, 나를 낳은 사람과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애달파하고 그리워 서글퍼합니다.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게 그리울 겁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때조차 버겁고 거칠어 어느 때는 나를 짓누를 듯 거대하게 해서 보이지 않도록 시야를 흐리게 만들게 하는, 말할 수 없어서 서럽고 서글픈 모든 이름. 모든 것. 


내가 이루고 싶어 하는 추상적인 일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뒤에 실현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도리어 화만 부추길 것이며 가슴을 짖이기고 답답하게 만들어 마치 소중한 사람에게 하루 아침에 복수를 당한 것 같이 느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심장이 약해서 몸이 노쇠해졌을 때라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갑자기 튀어 오른 쥐를 보거나 혹은 너무 아끼는 사물이나 사람을 상실한 순간을 심장이 버티지 못하거나 충격에 몸이 뒤집히고 말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람과 사물의 무게를 같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나는 물건을 무척 아끼긴 합니다. 내가 지금 연약하고 나약한 건 온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두르고 있어서입니다. 마음이 떠나지 않는 한 다시는 만날 수 없이 마음에 드는 완벽한 은반지와 너무도 사랑한 내 강아지도 나에게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똑바로 생각한다면 잃은 게 맞습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좋을지, 좋을 대로 생각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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