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Oct 31. 2023

부다페스트

마음에 들었던 것 1번 

  공허합니다. 하지만 전보다 생생합니다. 하지만 tv나 유투브 보는 것으로 또 자신을 마취시키고 싶어집니다. 현실을 잊으려고 하면 생각없이 살게되고 그러면 자신을 잃게되고 그건 살아있는 실감, 깊고 단순한 행복감을 잃게 되는 중대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유럽에 가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살아있는 낭만이 자신을 되찾게 만듭니다. 밤이 깊고 추운데 작은 광장의 벤치에 홀로 앉아 노란 가로등 불 빛 아래에서 몰두한 채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나 나무로 짠 바구니에 장을 봐 가지고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 사람 겨우 두 명이 설 만한 크기의 작은 테라스에 앉아 주말 아침 타올 가운을 입고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는 젊은 여자, 거리 가판대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어린, 젊은, 나이 든 사람들, 커다랗고 가지가 길게 늘어진 나무 아래에서 비로 촉촉한 어두운 거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담배를 말아 천천히 피우는 젊은 남자, 비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강 위로 난 다리를 건너려다 비 내리는 아침의 신선한 풍경에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자전거를 밀며 걷는 여자의 얼굴에서 신선한 아침 공기와 풍경이 느껴지는 것, 은색의 두꺼운 링 귀걸이를 한 백발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양 손목에 걸려있는 무수한 팔찌들, 무엇보다 사람들이 별로 서로 쳐다보지 않으며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몰두해 있는 분위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너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만 할 수 있는 양보와 배려는 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길을 걸을 때 거리를 가늠해가며 미리 지나갈 수 있게 자리를 만들고 양보하며 뒷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거나 동시에 마주쳤을 때 문을 열어 먼저 지나가라고 양보하는 것, 길을 건너다 차를 마주치면 항상 차가 멈춰 기다리는 것도, 차 문을 열려고 가다가 길 뒤에서 사람이 다가오면 충분히 문을 열고 탈 시간이 있는대도 사람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차에 타는 것, 이럴 때 지나갈 사람을 전혀 쳐다보지 않고 있어 재촉하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는 점. 이렇게 어쩌면 당연하지만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점잖음, 세심함, 사려 깊은 점에 내내 감동한 채 점점 즐기며 다녔습니다. 나는 항상 이러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보이면 미리 어디로 걸을지 정하고 한쪽으로 비켜 서로 여유 있게 지나치며 문을 서로 잡아주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줄을 똑바로 서서 일상에 불안할 일이 없이 긴장할 것 없이 서로 신뢰할 수 있게 살기를 꿈꿨습니다. 항상 유난스러웠던 그런 면이 유난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워져 과장스럽게 감동하며 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조용히 말해서 거리 역시 조용했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주말의 광장, 술집에서 광장 가득 깔아 둔 테이블에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있을 때도 시끄럽지만 시끄럽지가 않았습니다. 평소의 나라면 그 중간에 난 자리에 절대 앉을 수 없을텐데 거기에 앉아 있어도 누가 빤히 쳐다보는 일도 나를 그렇게 신경쓰는 일도 없이 각자 자신의 테이블에 몰두한 채 떠들고 있어 그 사이에 앉아 있어도 역시 숨 막히는 눈빛이나 지나치게 커다랗고 과격한 목소리나 행동은 보지 못했습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취하는 사람이 없어 말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편안하게 들려왔습니다.  거리에서 노래가 흐르는 걸 듣는 일도 잘 없었고, 가게 안에 노래를 틀어놓는 가게가 더 적었습니다. 그러니 낙엽을 밟는 소리나 빗소리, 돌 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가, 바람이 불 때 나뭇잎이 흩날리는 소리가,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 소리가, 두런두런거리는 목소리들이 오롯이 잘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은데 충분히 친절해서, 나를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때로 너무 눈빛과 인사가 따뜻해서 행복했습니다. 나는 그런 유대를 맺으며 그 안에서 살아가고 싶었는데 꼭 원하던 걸 경험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부다페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