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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Oct 29. 2023

부다페스트

2주간 여행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씻자마자 이 글을 씁니다. 씻고나니 비행기를 정신없이 타고 오는 길에 날아간 잔향마저 날아간 것 같지만 그래도 더 날아가기 전에 뭐라도 쓰고 싶었습니다. 

  에어비앤비로 커다랗고 휑한, 층고가 높고 거의 온통 흰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미로처럼 문이 많고 꺾인 구조라 물건을 하나 찾으려면 집을 뱅글뱅글 돌던 일,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일은, 나선형 계단을 4층까지 오르면 숨이 턱 막히던 일과 널찍한 화장실에 커다란 창문 두 개를 열어 놓으면 들어오던 바람과 거실 창문으로 바로 근처 성당의 종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던 일은 꿈처럼 행복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어렵게 자신을 찾았다가 다시 두고온 것만 같아 유난스럽게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의 생활을 좀처럼 사랑하지 못했던 건 아닌가,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며 흐르는 대로 그냥 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저는 또 유난히 집에만 박혀 있는 날들을 3년 가량 보냈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2주간 여행을 떠나면 내내 자극이 쉼 없이 떠밀려 옵니다. 나는 처음에 그 큰 집에 가서 세 개의 쇼파 중 한 곳 가운데 목욕 타월을 깔고 한동안 거기에만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온통 껌껌한 가운데 큰 침대에 몸을 푹 놓이지 못하고 좀 언 채로 잠에 들었습니다. 첫 날은 샤워 부스에서 씻으며 힘겹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욕실의 길고 큰 창으로 들어와 욕조를 비추고 조용한 가운데 새 소리와 아침 공기가 흘러 들어왔을 때에야 아름답다는 걸 알았습니다. 

  날씨는 대체로 어둡고, 조용하고, 흐린 가운데 공기는 축축하고 상쾌하고 때로 좋지 않았고 때로 비가 내렸습니다. 나무는 거대했고 나뭇가지는 길게 늘어져 숱 많은 가지에 다소 투명한 빛깔의 노랗고 연두색인, 여린 초록색의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거리는 처음부터 눈치챘는데 본 적 없이 조용했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고 발걸음 소리마저 부산스러운 법 없이, 개마저 부산스럽지 않고 온순하고 조용하게 산책했습니다. 거리에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일이 없고, 가게 안 마저 대부분 그랬고, 좁은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마주치기 전에 미리 마주오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거리를 두고 서로 길을 만들어줬습니다. 다가서서 어깨를 살짝 피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몇 걸음 전에 여유를 두고 더없이 조심스럽게. 사람들은 서로 빤히 쳐다보지 않으며 눈빛이 닿는 동시에 또한 조심스럽게 빗겨갔습니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인사 역시 조용했으며 빠짐 없었습니다. 그 모든 배려는 유난스럽지 않았으며 항상 염두에 당연히 두었다는 듯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습니다. 나는 무척 행복하게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서로 발걸음을 계산해 미리 비켜서는 것을 즐기면서 도리어 점점 긴장할 필요 없이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다소 어두운 색감의 건물들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건물마다 각각 세심하게, 엄숙하게, 작게 수 놓아진 조각과 무늬들과 화사하지 않은 색감은 내 마음에 더없이 짙고 편안하게 와닿았습니다. 조용한 말소리, 조심스럽고 깊은 눈빛, 헤어질 때의 긴 인사, 별안간 환하게 웃는 표정…… 나는 오래간만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때에야 찾을 수 있는 자신을 찾았습니다. 그건 예전보다 다소 늙은, 그러나 별 상관이 없이 사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을 느낄 수 있는, 날씨를 느낄 수 있고, 별안간 어릴 때와 같은 웃음이 터져나오는 마음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몹시 즐기다가도 떠날 때가 다가오면 보통은 가슴이 저려오지만 끝내 정리가 되곤 했으나 이번에는 어릴 때처럼 끝까지 눈과 마음에 새기며 떠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나는 어떤 식으로 마음을 쓰지 않고 머무를지, 걸을지, 인사를 건넬지, 어떤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지낼 건지 끊어질 듯 말 듯한 실낱같은 갈피를 손톱 끝으로 겨우 잡고 있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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