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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21. 2024

울멍울멍

슬픔이 몸속에 넘쳐흐른다. 흐르다 울컥하고 조금 토해내고 말것처럼 투명하게 울렁인다. 가슴속에 울음이 걸려있다. 남아있다. 


죽음 앞에 모두가 공평하고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의 공포에 꼼짝없이 떨고있는 나는 죽기 위해, 죽음을 겪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더 해맑고 더 우스운 말을 할 수 있게 굳지 말고 더 웃긴 생각으로 시간을 장난스럽고 사랑스럽게 보낼 궁리를 해야한다. 울컥이다 울어버리고 울다 잠들어버리고 깨어나서 여전히 울음이 가슴속에 걸려 눈물이 새어나오고, 또 울음의 여운으로 머리가 지끈이고 온 몸이 젖은듯이 무거워도 투명하게 뱉어버리면서. 나는 원래 울음을 잘 참지 못한다. 뭐든 잘 참지 못한다.


적응하는데 느리게 긴 시간을 온통 쏟은 뒤에 결국 나는 너무 행복해져서 너무 적응하고말아서 또 영원하지 못한 것때문에 울게된다. 너무 소중하고 서럽도록 소중해서 끝내 회복할 수 없을 것처럼 너무 행복한 것 때문에 미리 상처받아 울고만다. 이러니 시간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복에 겹도록 안정됐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리고 겁없고 싱싱했던 시절을 지나 시간이 매 순간 떠난다는 걸, 결국은 떠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던 때를 지나 이제는 어느덧 예감이 확실히 자리를 잡고야 말았다. 서럽게. 벌써 그립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노화가 진짜 시작된 것 같다고 느껴지자 이젠 침묵이 더 편할 것 같다(아직 떠들지만). 부모님이 정말로 나이 들어가는 현상. 그때서야 지난 시절의 철없는 내가 너무도 부럽고 그립게 생각되는 일. 영영 고향을, 집을, 떠나온 어린 시절을, 진정한 나를, 다시 없을 사랑을 가슴 저리게, 입을 떼기 어렵도록 점점 말할 곳 없이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예감. 시간이 어느 순간 나를 삼켜버리는 일. 몹시 무력해지는, 또 서러워지는, 울어도 소용없는,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괜히 투정부릴 곳이 다신 없어지는, 망가지는 일만 남은 것 같은 절망. 


그러나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떠밀려오는 시간 속에 사실 아무것도 잃은 적이 없다. 이번 생은 정말 복에 겹고 여한이 없이 빠짐없이 행복하게 지내왔다. 아직 울면 달려올 가족들이 그대로이다. 지금 얼마나 안전한지, 또 따뜻한지, 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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