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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u Ivana Kim Nov 20. 2016

어떤 날도, 어떤 말도..

하루는 시린 겨울비가 내렸으나 다음 날 햇살 한 줌의 허브를 심다

한동안 브런치에 들어오지 못했다. 확실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8월 중순에 한국에 돌아와 시차적응 후 9월부터 모든걸 뒤로하고 두달동안을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었기 때문.

모든것이 끝나고 지나간 뒤에야 하나둘씩 미뤄둔 일이 기억이 나고, 문득 궁금해졌다. 

 2016년을 마무리하며 다른 이들은 어떤 다짐을 했을까? 
내가 읽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는 어느 층의 몇번째 칸 쯤에 놓여져 있을까?


입사보다 어렵다는 퇴사.. 이별, 그리고 시작. 


처음으로 많은것을 배워 쌓아왔고 1년 4개월간 정든 멕시코 기아자동차 비서직을 퇴사한 이유는 단 하나.. 

그동안 꿈꾸며 막연히 그려만 왔던 통번역대학원에 대한 결심이 비서일을 하면서 완전히 굳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공식까지는 멕시코에 남자..라는 2년간 업무 기간 완수 계획에서 다소 벗어나

무더웠던 5월 첫 양산 시작이라는, 어찌 보면 기아차 멕시코 법인의 가장 중요하고 굵직한 시점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나의 캘린더는 앞당겨졌다. 


입사보다 어렵다는 퇴사.. 

비서 자리의 마지막 순간이였던 만큼 모든것이 조심스러웠고 탈없이 예의갖춰 인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주말에도 페스케리아 공장사무실에 출근해서 언론기사 스크랩북과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며 

마지막 전체 직원에게 보낼 메일을 미리 작성하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멕시코 공장에서  최초 생산된 기아차 K3 , 가슴뭉클한 결과물에 서명을 남기는 모습

지금 생각해보면 완벽한 마무리는 존재하지 않는것 같다. 그간의 업무를 정리하는것도, 그동안 알게된 수많은 직원들 모두에게 인사하는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려면, 그만두지 않고 계속 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만, 스페인어에 관심이 많은 법인장님을 위해 마련한 화이트 보드에 매주 월요일마다 스페인어 한마디씩 적는것은 나의 작고도 중요한 일과중 하나였다. 

그래서 마지막 근무일이 월요일에, 

 "No es un adiós, es sólo un hasta luego"
(영원한 작별이 아닌, 다시 또 다시 만나요) 


라는 문구를 남겼고, 확실히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가 잘 되었다. 라는 실감이 든것같다.





그리고 시작된 두달간의 통대 준비는, 기간에 관계 없이 그 어느때보다도 진심을 다해 열정을 담아 공부했다.

2달이라는 시간을 한번도 길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지만,

남들이 1년 혹은 2년까지 준비한다는 통대 시험에 필요한 자료를 압축해서 책 한권이 나왔을 정도로

그 시간은 소중했고 값졌으며, 내 마음의 꿈속에 깊게 자리잡았던 날들이였다. 

스페인어로 잠꼬대하기 일쑤였고, 자전거까지 중고로 구입해서 동네 도서관으로 패달을 돌렸다.


시간을 벌고 싶었다면 멕시코에서 발걸음을 더 빨리 돌렸을 수도 있겠지만, 난 누구보다도 멕시코에서 처음으로 생산될 기아차를 간절히 기다렸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사온 집앞 하천 따라 라이딩하다 감탄하게 된 가을 햇살과 , 새로이 함께하게 된 자전거 민클이(민트+바이시클)

두가지 토끼를 다 잡기는 무리였다. 그렇담 그에 맞는 준비와 결과에 맞서는것이 나의 몫이였다.  


 통번역 관련해서 많은 경험을 해본건 사실이지만, "통역공부"는 그야말대로 끊임없는 "훈련"이였다. 

내가 멕시코 기아차에 근무했건, 우루과이에서 대사관 인턴을 했건간에.. 

그런 백그라운드는 공부에 어느정도 "감"을 남보다 빠르게 잡을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을뿐, 

실제적으로 시험에 관한것은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공부하는 내내 느꼈다. 





올해 특히나 국제.국내에 수많은 이슈가 있었기에 사드배치부터 밥딜런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정리하고 익혀두어야 할 주제들이 범람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들이 올라왔다.

1차 필기 시험을 보는 하루 전날까지 나는 김영란법을 스페인어로 정리하고 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10월 22일 토요일 9:30 AM 

외대역에 한시간 일찍 도착해 롯데리아 차디찬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그동안 정리한 책을 쭉 훝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남들은 다들 가져온 흔한 전자시계가 없어 당황하여 손에 땀을 쥐며,

그렇게 시작된 1교시 요약 시험은 스페인어를 방송으로 듣고 한국어로 옮기는 테스트였는데

책상에 올려진 노트테이킹용 A4용지 한장을 보며 심장 뛰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이틀전까지 열심히 정리해둔 한-콜롬비아 FTA가 나와 무지 반가웠지만,

아는 내용이기에 더 긴장이 되었다고하면 잘 믿어주지 않겠지..?

2교시 논술 시험에서는 시간배분을 너무나도 잘못해서 마지막 문제를 마무리할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1번 한국어 지문이 어려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스페인어 지문은 논술 구조는 커녕 읽을 시간도 부족했다.

이게 모의고사인지 실제 시험인지 분간이 안갈정도로 답안의 분량이 눈에 보일 만큼 부족했다. 

시험지를 거둬가는 그 순간까지 내 펜은 멈추지 않았고 일단 서론-본론-결론이라는 대략적 구조는 완성해냈다.

그래도 통대 시험을 보고 나서 스시집에 가서 긴장을 풀며 맛있는 점심을 배부르고 편하게 먹을 수 있을정도로

스페인어 과외 선생님 Claudia가 나에게 물어봤던 시험 후의 "sensación"(느낌)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잘 본건 결코 아니지만, 어떻게든 잘 하면 면접까지 갈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이 컸던것 같다. 



그렇게 오랜만에 편한 주말을 보내고 다시 팽팽한 분위기를 잡고 면접 준비를 한창하고 있던 어느 수요일.

마음속 깊이 올해 최종 합격은 아니여도 면접에서 교수님 얼굴 정도는 뵐 거라는 나의 예상이

차디찬 겨울비와 함께 초라하게도 빗나가던 날이였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믿기지 않아서 다시 한번 수험번호를 입력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처음엔 '내가 왜 명단에 없다는거야??' 물었지만 모니터 화면은 대답이 없었고

그다음엔 '내가 도대체 무슨 실수를 한것이기에'..

그렇게 몇분이 지난 후에야 '39번 수험자는 올해 1차 합격에서 떨어졌구나'라고 깨닫게 된것이다.


과외를 끝내고 열심히 면접 준비를 하다가 시험 결과가 초조해서 아침 점심도 거른 나는

커피숍 문을 다섯 시간만에 나서는데 시리도록 서러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왔다. 

힘든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탔는데 마지막 빈자리에 내 앞사람이 딱 앉고 나만 서있게 되었다.

누가 봐도 평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중의 하나인것을, 

이런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운없이 내가 첫빠로 떨어진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날의 나는 그 누구도, 어떤 말로도 위로를 구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실망감이 컸다.

 

 

이제는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는 일만 남은 내 마음의 허브

부모님 처럼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두달 공부한거면 올해는 떨어지는게 당연한거라고.. 하지만 그건 책 한권을 만들고 내년에 대학원생이 되어 매고 다닐 백팩까지 샀던 내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간이 짧았다는 치명적인 펙트는 부정할 수 없기에 그 다음 햇살이 좋았던 날의나는 아쉬운 맘을 툭툭 털어버리고 가까운 꽃집에 가서 그동안 미뤘던 숙제를 하나 해냈다.

시험 준비를 시작했을때 사서 키워온 페퍼민트 허브 화분에 가지쳐주기..!!




새싹처럼 작았던 허브가 어느새 잭과 콩나무 처럼 자라서 이리저리 넘어지고 있었는데, 가지를 쳐주니 곧게 더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되어서 마치 앞으로의 내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불합이라는 단어는 결과에 불과하며, 내 스페인어 실력이나 노력의 수준을 말해주지는 않는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발휘되는것은 조금의 시간과 과정이 더 필요한 법..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말은,,

"앞으로 365일 동안의 통대 입시 생활도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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