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갤러리 거리를 걷다 깨달은 나의 어릴 적 꿈
뉴욕 맨해튼의 갤러리 거리를 따라 걷는다. 예술인들에겐 천국과 같은 이 도시. 창문에 비친 내 얼굴에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윽한 눈빛과 은은한 미소가 담겨있다. 아, 이보다 행복할 수 있는가.
어느 순간, 작품 하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이 밀려온다.
어릴 적 나는 뭐가 되고 싶었는가?
나의 꿈은 예술가였다. 어느새 직장인이 된 지도 4년 반. 예술가의 꿈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가장 기다려지던 시간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만들기 놀이’. 집 안에 굴러다니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마구 고르고, 가위로 오려 낸 조각들을 풀로 붙이며, 하나의 콜라주 작품을 만들곤 했다.
가끔은 하얀 도화지 대신 집 창문에 붙여보면 어떨까 싶어 몇 번의 돌발행동도 있었다. 부모님은 퇴근 후, 조각 그림들로 메꿔진 우리 집 창문을 보며 놀란 표정을 감춰야 했고, 작품을 가리키며 해맑게 설명하는 어린 나를 혼내지 못하고 늘 웃으며 칭찬해 주셨다.
차를 타고 가족 여행을 갈 때면, 뒷자리 창문에 입김을 불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뽀드득 소리를 내며 그림을 그렸다. 그 아이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공책에 생각나는 글을 바로 끄적였다. 완성된 그림과 글을 들고, 마치 전시회 도슨트처럼 가장 뿌듯한 표정으로 부모님께 설명하던 그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유치원 시절에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나만의 비밀스러운 예술 놀이는 계속되었다.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미술 수업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어린이 무궁화 그리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에도 미술 시간마다 소질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공부와 음악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었고, 나와 미술 사이의 사랑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더 이상 미술가의 꿈은 좇진 않았지만, 한 가지 결심은 했다.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에 꼭 미술 수업을 듣겠다고. 그렇게 4학년이 되던 해, ‘Introduction to Drawing’ 수업을 수강하게 된다. 나는 마치 미술 전공생처럼 매일 밤을 새워 과제를 했고, 그 3개월은 내 대학 시절 가장 꿈같은 순간으로 남아 있다.
커다란 도화지와 연필, 초크, 붓을 가득 안고 캠퍼스를 누비던 그 시절의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꿈이 있다.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꿈일지라도, 꿈은 언제든 꿀 수 있기에 꿈이지 않을까.
나에게 ‘찐’ 행복을 안겨주는 그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
그것이 성인이 된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에서 너무나 사랑했던 마지막 장면.
문학소녀 애순이는 관식이에게 말한다.
(아이유의 목소리로)
“우리 사는 내내 진짜 별거, 별거 다 하자!
하고 싶은 거 막 다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