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낯선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연고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얼마나 살지, 어느 동네에 살아야 할지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사도 여러 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시기를 몇 번 거쳤다.
이렇다보니 아이에게는 초등학교 1학년의 시작이 또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새로 온 집의 환경이 더 좋아졌지만 아이는 익숙했던 옛날 집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좀 더 민감하고 천천히 하는 편이다.
늘 그래왔듯 아이가 잘 적응할 것이라 믿지만 왠지 모르게 초등학교는 부모인 나도 더 긴장됐다.
아이에게는 낯선 공간에 홀로 떨어져 배워야 할 것도 새롭게 관계도 시작해야 하는 막막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했던 말을 빗대어보면,
유치원에 비해 학생은 많아졌고,
스스로 해야 하는 일도 많아졌고,
놀이 시간보다 앉아서 수업을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익숙한 얼굴 하나 없는 어색함을 견디는 시간이 많아졌다.
3월, 일주일쯤 되었을 때로 기억한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예상은 했지만 아이의 입 직접 들으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같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하며 상담에서 말하던 것들을 적용했다.
우선 아이가 고민하는 것을 들었다. 아주 성심성의껏,
다음은 조금 힘들어도 학교에 가고 있는 그 자체를 격려했다. 몰래 아이를 응원하는 쪽지를 넣어주기도 했다.
또 나의 경험담도 알려줬다.(잘하고 싶은 아이에게는 부모의 실패담과 극복과정을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얘기 한 두 번에도 아이는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러면 부모는 아무 소용이 없구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함께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부모는 빨리 아이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싶다. 아이의 좌절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더 불편하고 괴롭다. 하지만 부모는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를 믿고 함께 그 좌절을 견뎌주는 것이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방법은 단숨에 효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을 함께 견뎌준다면 아이는 자신도 몰랐던 힘을 경험하게 된다. 또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단단히 하게 될 것이다.
부모도 이 과정을 통해 아이의 힘을 더욱 믿고 지지하게 된다.
아이의 좌절을 버텨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