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34)
비닐하우스 (34)
“꽁치야! 너는 내가 왜 이런다고 생각하냐?”
김 회장이 가죽 소파에 앉아 캔 커피를 마시면서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른다고…”
“네”
“그래 시간 없으니까…. 설명해 줄게.
나의 친절함은 이게 마지막이다.
… 음…
헌책방 오더에 의해 내 딸 연지가 죽었어.
너도 잘 알지? 헌책방이 제멋대로 오더 바꾸는 짓은 안 한다는 거.
누가 헌책방에 오더 넣었지?
공치(공치수)는 위아래로 눈 알을 돌리면서 지금 상황 파악을 하는 듯 보였다.
“회장님 오해입니다. 오더 넣은 것은 제가 맞지만…”
양평 하우스가 갖는 의미를 공치수는 잘 알고 있다.
자칫 말 한마디 잘못한다면, 자신은 내일 아침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 신경을 쓰면서 대답했다.
“회장님!
봉투를 열어 본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타깃이 누군지 알아야 죽었는지 확인하고 잔금을 치르지 않겠습니까.
제가 봉투를 열어 봤을 때는 틀림없이 김연지였습니다.
정말입니다.
아니 세상에! 김연지가 회장님 따님인 줄 알았다면 어떻게 제가 살인 오더를….
틀림없이 누가 봉투를 바꿔치기한 겁니다.”
김 회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공치수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 공치수는 애초부터 타깃이 김연지였다고 실토했다.
청부 살인 봉투가 바뀐 것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판명된 것이었다.
킬러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불륜녀 대신 자신의 딸을 죽인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김 회장은 잔금까지 치렀다.
“넌 내 딸 이름도 몰랐냐?…
얼굴도 모르고?”
질문하는 김 회장도 공치수가 연지 이름과 얼굴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부에 노출된 적도 없고, 어릴 적 봤던 이충도 지금의 연지 얼굴을 본다면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옛날 그 사고로 돌아가신 사모님 밑으로 자녀 분 하나 있다는 소리만 들었고,
실제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작업은 누가 했어?”
“헌책방에서 누가 작업하는지는 안 알려 주지 않습니까.
알려고도 하면 안 되고….
불문입니다.
그냥 시나리오 특별 주문만 강조했습니다.”
김 회장이 작은 의자를 들고 공치수가 묶여 있는 의자 앞에 다가가 앉았다.
“오늘 나를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어.
네가 봉투를 바꿔서 연지를 죽인 다음, 시신 확인하러 온 나를 죽였다면 봉투가 바뀐 거는 아무도 모르는 거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의 말에 모든 이들의 뇌를 정지시킨 후 잠시의 정적이 흘렸다.
“만약 내가 안 죽고 살아 돌아온다면…
나는 몰랐다.
나도 모르게 봉투가 바뀐 거 같다고 주장하면 되는 거구.”
“회장님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봉투는 틀림없이 누가 바꿔치기 했습니다.”
김 회장은 말없이 꽁치를 쳐다보면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지금 꽁치는 바꿔치기된 봉투를 전달만 했다고 우기고 있었다.
또다시 무서운 정적이 흘렀다.
김 회장은 만에 하나 오더 봉투가 바뀌었다고 치고 생각해 보았다.
‘이충은 그런 짓을 할 인간이 아니다.
그냥 앞에서 누굴 죽이면 죽였지 골치 아프게 봉투 바꾸고, 덤프트럭 준비하고 그럴 위인이 못 된다.
혹시 내가 실수로 누구에게 비서실장 얘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진성, 이충, 공치수 이 세명 밖에는 없다.
이 세 명이 입을 잘 못 놀렸을 수도 있을까?
이런 일을 함부로 발설하거나 실수할 애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공치수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배신자가 맞다.
꽁치(공치수)는 지금 자신의 계획이 어긋나 내가 안 죽고 살아오니 변명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김 회장은 공치수에게 사실대로 얘기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참았다.
아무리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도 부하 직원들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딸을 죽인 배신자를 살려 둘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중요한 봉투를 어디가 잘 뒀겠지…그런데 누가 바꿔치기했다…
그리고 … 음… 헌책방에 오더 넣을 때 확인해 보니 타깃이 김연지였다…
이 말이지?”
의자에 묵인 공치수는 앞으로 몸을 숙여 ‘쿵’ 하며 머리를 땅에 박는 동시에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회장님! 저 아닙니다. 억울합니다.”
또다시 어둠을 집어삼킬 듯한 정적이 하우스 안에 흘렀다.
‘똑똑.. 똑’ 하며 간간이 떨어지는 수도꼭지 물방울 소리만이 하우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귓가에 맴돌았다.
김 회장은 이충 상무에게 무언의 고갯짓을 했고 하우스를 나와 바로 해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서울에 올라오지? … 늦더라도 잠시 볼 수 있을까?
집 주소 나 약속장소를 알려주면 아저씨가 차를 보낼게.”
김 회장은 내일 해주가 오면 꽁치의 저 변명도 밝혀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 그것을 알아야 했다.
………….
온대성 나무와 관목류가 즐비한 양평 비닐하우스 한쪽 구석에는 김장독 흔적으로 보이는
바닥 흙 색깔이 다른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충 상무의 지시로 그중 한 곳의 구덩이가 파지기 시작했고 꽁치는 자신이 파묻힐 구덩이를 보면서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옷이 벗겨진 공치수는 사정없이 때리는 몽둥이질을 이를 악물고 견디어 냈다.
“그만”
하우스에 다시 들어온 김 회장의 지시에 의해 무자비한 몽둥이질은 중단되었다.
"황규가 꼬셨냐?
뭐 큰 거 하나 떼 준다고 하던?
근데 말이야… 음...
봉투 바꿔치기를 하려면 나를 넣지… 왜 연지야?”
연지는 왜 죽였어?
난 그게 진짜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아닙니다.”
공치수의 흐느끼는 눈물이 코와 입에서 나온 핏물과 섞여 줄줄줄 바닥에 떨어졌다.
김 회장은 지금 해주에게 당장 이리로 와서 이놈이 살인을 사주한 놈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해주는 내일 서울에 온다고 했다.
당장 초능력 아이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해주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묻어! “
김 회장이 이 한마디 말을 하고 하우스를 나가자 그 안은 분주해졌다.
이번에는 이충이 따뜻한 온도를 가지고 공치수에게 물었다.
“꽁치야! 너 잘 생각해라. 우리 형님이 어떤 분이냐?
너 그러면 안돼… 너 하고 나, 우리 옛날에 형님 도와서 여기까지 왔잖아!
그러니까 내일 사실대로 말해!”
“너 지?
네가 그랬지?”
이충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치수의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이충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꽁치의 말을 알아들었다.
“뭐…뭔 말이야?”
“네가 봉투 바꿔치기했지!...
어차피 나는 내일 죽어. “
공치수는 숨을 헐떡이며, 실핏줄이 터진 입 안의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너지 너…..
난 알아… 알아…“
“미친 XX!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공치수는 이때까지의 억울한 얼굴에서 분노의 감정으로 바꿔 이충에게 소리를 질렀으며, 이충은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충은 자신을 의심하는 공치수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비닐하우스를 나왔다.
비닐하우스 안의 사람들은 땅속에 박히는 공치수의 몸부림치는 절규는 보았지만, 그의 비열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별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김 회장은 해주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았는데 아직 아이는 확인을 하지 않았다.
늦더라고 오늘 해주가 와서 공치수가 범인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무작정 꽁치를 죽일 수도 없고, 틀림없이 배후가 있을 텐데 누구일지 아직 감도 못 잡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방검복과 연장을 챙기는데, 진성이가 김 회장에게 다가왔다.
“성주 병원에 있는 애들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경찰 조서받고 나오는 그 덤프트럭 기사 잡았답니다. “
“오케이… 지금 어디에 있어? “
“일단 차 트렁크에 넣어 놨다고 하네요.”
“추가로 보낸 인력… 병원 경비 교대시키고 바로 트렁크에 실은 놈 이리 데리고 와. “
“알겠습니다.”
김 회장은 다시 공치수가 있는 하우스로 발길을 돌렸다.
공치수는 발가벗겨진 채로 두들겨 맞고 지금 머리만 빼고 땅속에 박혀 있는 중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쇼크로 죽을 것이지만, 꽁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김 회장은 공치수처럼 하룻밤을 죽음의 공포 속에 있었던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보통 사람들은 살기 위해 비밀은 물론 자기 내장도 꺼내려고 했다.
그만큼 죽음의 공포가 무섭기 때문이었다.
공치수가 작심한 듯 고개를 들고 먼저 말을 꺼냈다.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