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꼬였다 (37)
일이 꼬였다 (37)
사람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땅속에 묻혀 하룻밤이 지나면 저체온증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
다행인지 공치수는 비닐하우스 안이라 얼어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극강의 공포를 느끼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공치수는 김 회장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고, 김 회장은 그가 이제 모든 것을 실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진작에 그랬으면, 우리 서로 이 고생은 안 했을 것 아니냐?
황규가 시켰냐?”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 핸드폰 좀 갖다 주세요.”
공치수가 뜬금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전혀 예상 밖의 말이었다.
“핸드폰?”
“네”
“왜?”
“이충 상무가 사모님과 의심스러운 사이입니다.”
김 회장은 순간적으로 잘못 들었나 했다.
죽도록 터지고 땅속에 박혀 있던 놈 입에서 한다는 소리가 마누라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충 하고…
“제 핸드폰을 주시면, 사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ㅅㅂ…. 뭐 하자는 거야!”
“제발 회장님 제 핸드폰 좀…
회장님 제가 어제 밤새도록 생각 또 생각을 했습니다.
억울합니다. 사실 저는 회장님 따님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봉투 속 여자가 청부살인 대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충 상무가 사모님과 짜고 봉투를 통째로 바꿨다면, 일단 꼬여버린 의혹이 풀립니다. “
“넌 어떻게 마누라랑 이충이 붙어먹었는지 안 거야?
“회장님 지시로 음성에 땅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자주 가는 해장국 집 주차장에서 이충 상무의 차를 보고 반가워서 다가가려다 말았습니다.
사모님이 조수석에 있었습니다.”
“지금 둘이 밥 먹었다고 이러는 거야?”
“회장님! 느낌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보통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썼습니다. 전직 형사 출신인데 양현모라고…
“뭐 사람을 써?”
“네… 양현모에게 사모님 뒤에 붙어서 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불륜이 의심되는 사진을 보내왔고, 그게 지금 제 핸드폰에 있습니다.”
공치수는 입안의 실핏줄이 터지고 목이 부어서 계속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김 회장은 물 한 잔을 가져오라고 진성이에게 지시했다.
땅속에 박힌 채로 진성이 준 물을 마신 공치수가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이번 청부살인 타깃 위치 파악도 양현모에게 시켰습니다.
긴급으로 처리하라고 하셔서 위치 파악 후 헌책방에 알려줘야 했습니다.
그런 일을 아는 경찰을 통해 알아볼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전직 형사가 왜… 너 따까리 짓을 하지?”
“제법 능력 있는 형사인데 그만두고 하는 일도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필요할 때 쓰려고 흥신소를 하나 만들어 줬습니다.
만약에 제가 진짜 회장님 따님을 죽이려고 했다면 증거자료 다 남기고 양현모에게 그런 일을 시켰겠습니까?”
“하나 물어보자. 왜 바로 나에게 보고 안 했어..”
“회장님! 이충 상무도 저에게 형님입니다.
조만간 그만두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김 회장은 공치수가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꾸미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충이 자신의 와이프랑 바람이 날 리가 없었다.
일단 확인을 해야 했기에 김 회장은 진성을 불러 공치수의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했다.
공치수가 저장한 사진 속에는 이충과 와이프인 진자경의 불륜을 의심할 만한 사진들이 진짜 있었는데, 주로 둘이서 차 안에 있거나 호텔에 들어가고 나오는 사진들이었다.
김 회장은 특유의 표정 없는 얼굴로 공치수를 바라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만 보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증거였다.
“회장님… 제가 말한 양현모에게 이충 상무를 감시해 보도록 해 보십시오.
그러고도 아무런 증거가 안 나온다면, 그때 가서 저를 죽이십시오.”
“미친 XX..”
“회장님이 이충 상무를 각별히 신뢰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모님과 불륜을 저지르면서 딴생각이 생겼을 겁니다.
회장님 돌아가시고 연지 아가씨도 없다면 재산 상속은 전부 사모님한테 돌아갑니다.
조직은 이충 상무가 그대로 이어갈 수 있고요.
회장님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 줄 압니다.
이충 상무가 그럴 일 없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회장님 저는 아닙니다.
제가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조직을 승계할 것이며… 저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시끄러워!”
김 회장은 공치수의 말을 계속 듣고 싶지 않았다.
이충이 자신의 아내 진자경하고 불륜을 저지른다 해도 연지를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진자경이 컨트롤 했다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자경은 그리 머리가 좋은 타입이 아니었다.
이 모든 계획을 진자경이 준비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제3의 인물이 있다는 것인데…..
김 회장은 난데없이 이충 하고 와이프가 이 모든 일에 중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꽁치의 저 당당함을 깨부술 초능력 아이 해주가 필요했다.
혹시나 해주가 자신의 문자 확인을 했을까 싶어서 핸드폰을 봤는데 답글이 와 있었다.
지금 병원이라고 했다.
어디 아픈 애를 여기 오라고 하기도 그렇고 일단 덤프트럭 기사가 오면 어느 정도 사실의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성아… 덤프 그 기사 xx 말이야. 언제쯤 오냐?”
“방금 출발했으니 차가 막히더라도 저녁 전에는 올 것 같습니다.”
이때였다.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시장님께서 정산할 일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리로 좀 오시죠?”
낯설지 않은 재수 없는 목소리는 서울시장 당선이 확실한 조재헌의 끄나풀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번 만났던 양재동 주택가로 바로 가겠다고 했다.
꽁치도 심문해야 하고 이충과 마누라의 관계도 밝혀야 하는 등 할 일이 태산인데 조재헌이 부르니 가야만 했다.
“이 실장(이진성)!
이 자식 일단 좀 빼서 씻긴 다음에 지하 골방에 처넣고 아무도 못 만나게 해!
만약 도망가려고 하거나 이상한 짓 하면 그냥 죽여 …”
사진 몇 장으로 땅 속에서 죽을 뻔 한 꽁치는 살아 나오게 되었고, 김 회장의 하루 시작은 처음부터 너무 뒤틀어지고 있었다.
일이 꼬여도 너무 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