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연기가 왔다 ( 41 )
하얀 연기가 왔다 ( 41 )
해주는 엄마를 따라 병원에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하얀 연기의 비밀은 못 풀었지만, 죽음을 가져오는 검은 연기의 정체는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본 검은 연기와 아저씨 머리 위에 있던 검은 연기는 모양새와 움직임이 많이 달랐다.
아저씨 연기는 무서운 악마의 형상이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마치 춤추는 풍선 인형 같았는데, 병원에서 본 검은 연기는 연한 파스텔 톤의 안개 같았다.
아저씨가 어떻게 죽는지 볼 수만 있다면 그 연기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아저씨를 만나야 했다.
혹시나 아저씨가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핸드폰 문자 확인을 했더니 문자가 와 있었다.
“어디 많이 아픈가? 몸 좀 나아지면 아저씨한테 연락 부탁해요.”
어디 아파서 병원에 간 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아저씨는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오숙희 여사는 핸드폰으로 골프 레슨 방송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주는 나중에 커서 직업을 고를 때 죽음을 보는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죽을 놈은 놓아두고 살 놈만 살린다.’
죽음이 보이면 어떨까 했더니 엄마가 의사 얘기를 하면서 했던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의사도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또 있을까 생각을 하는데 킬러가 떠 올랐다.
오숙희 여사는 폭력영화 시청을 절대 금지해서 태연이 집에서 본 킬러 영화가 생각났다.
키우는 개 한 마리 죽였다고 복수를 하는데 사람 죽이는 것이 멋있었다.
킬러가 되어 생각해 보면, 검은 연기가 춤추는 목표물에 다가갈 때 짜릿할 것 같았고,
하얀 연기가 주변에 나타나면 먼저 다가가 죽이면 되니 완전 자동 경보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킬러라는 직업은 오숙희여사에게 말할 수 없는 직업이고, 다른 직업을 하면서 해야 한다면 둘 다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은 의사이고 쉴 때나 주말, 휴일에 취미 삼아 킬러를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을 더하다 보니 의사와 킬러를 겸업하려면 체력이 좋아야 할 것 같았다.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도 나중에 사람 죽일 때 도움이 되는 운동으로.
핸드폰을 보면서 죽은 사람처럼 꼼짝달싹 안 하고 있는 오숙희 여사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나 운동 배울래…. 내 말 들었어? “
오숙희는 부자연스러운 로봇의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린 후 초점 없는 붕어의 눈으로 해주를 쳐다보고 말했다.
“해!…
근데 무슨 운동하려고? “
“격투기. “
일분일초의 지체도 없이 해주가 대답했다.
“아니 좀 있으면 중학생 될 건데, 또 누굴 패서 엄마 학교 불려 다니게 만들라고 그래!
수영이나 탁구를 해! “
“격투기 할래. “
“야! 성해주!”
버스 안의 사람들이 엄마의 큰소리에 반응을 하였으나 오숙희 여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 요즘이 어떤 세상인 줄 알아!
중학교부터는 싸움질하면, 대학이고 나발이고 다 끝이야.
네 인생 종 친다는 거지.
땡땡땡 알아?
학교폭력위원회 열리고, 넌 감옥에 갈 수도 있어!”
해주는 생각 했다.
지금 오숙희 여사는 마치 내가 교실에서 누굴 죽인 다음 법정에 서는 모습까지 상상하며, 오버하고 있다고.
“격투기로 정했어. 태연이랑 같이 할 거야. “
아직 친구 태연이한테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일단 같이 한다고 하면 엄마의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들어낸 창의적인 거짓말을 했다.
“운동하면 여러 친구들도 사귈 수 있어.”
“아 누가 뭐래!
근데 왜 하필 격투기야! “
격투기라는 운동에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대를 하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엄마의 반응이 놀라웠다.
“태연이가 먼저 하자고 했어.
격투기 하면 줄넘기 많이 하는데, 줄넘기 많이 하면 키도 클 수 있다고 했어. “
두 번째 창의적인 거짓말을 했다.
해주는 살면서 거짓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가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알고는 있는데, 어느 상황에서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런데 성주 여행을 다녀온 이후 자신의 거짓말이 창조적인 진화를 하고 있었다.
“격투기 체육관에서 줄넘기?
뭐 하러 체육관을 가! 동네 놀이터에서 줄넘기하면 되겠네. “
“우리 동네 시장 앞에 격투기 체육관 새로 생겼어.
거기 갈래.”
“일단 알았어. 집에 가면서 생각해 보자.”
엄마는 다시 핸드폰 속 골프 세상으로 빠져 들었다.
해주는 핸드폰에 빠진 엄마를 바라보며, 골프라는 운동에 대해 생각을 했다.
골프는 오숙희 여사가 하는 유일한 운동인데, 엄마의 몸은 헬스 선수처럼 온몸이 근육 덩어리였다.
전에 샤워하고 나온 엄마를 본 적이 있는데, 무슨 가정주부가 근육돼지에다 흉터도 많았다.
골프라는 운동이 어떤 운동인지 모르다가 티브이에서 시합하는 것을 봤는데, 서로 싸우지도 않고 그리 격한 운동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오숙희 여사는 틀림없이 골프 치다가 싸우기도 하는 것 같았다.
해주는 격투기 다음에는 골프도 배워 엄마처럼 근육을 키워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
오숙희는 자신의 아들이 점점 정상인처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생기고, 거짓말도 하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지만 한 가지가 걸렸다.
근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버스에 내려 집에 가는 길에 건너편 시장 입구에 있는 체육관이 보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해주하고 같이 있는 김에 한번 가 보았다.
체육관은 지하에 있었는데, 새로 오픈해서 그런지 나름 깨끗하고, 공기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일 년치 회원권을 끊었다.
해주는 정상인처럼 싫증을 느끼거나 지루함을 느껴서 그만두겠다고 할 애가 아니었다. 그러나 체육관 관장은 초등학생 회원권을 일 년치 한꺼번에 등록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지 놀라는 표정이었다.
오숙희는 어린아이 운동 등록 서류를 작성하는데 무슨 은행 업무처럼 작성하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운동 목적을 묻는 질문지에 건강증진이라고 작성하면서 잠시 죽은 해주 아빠를 생각했다.
‘죽은 아빠를 닮고 자기를 닮은 저 아이는 틀림없이 격투기를 씹어 밟아버릴 놈이다.
내가 지금 격투기를 배우게 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체육관 등록을 하고 밖을 나오니 옅은 회색 구름 속에서 따뜻한 푸른빛 하늘이 살짝 보이는 것이 멋있어 보이지 않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갱년기가 오는 것인지 안 하던 여러 가지 불안한 생각들이 오숙희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해주가 만약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수영이나 골프를 시키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격투기라니….’
해주가 커가면서 점점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것은 좋았지만, 왜 하필 격투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관심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단 긍정적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해주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
해주은 예상보다 어렵게 엄마의 허락을 구해 격투기를 배우기로 한 것이 신기했다.
태어나서 엄마 이외의 사람에게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아주 멀리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어떤 것이었다.
‘성주에서 본 하얀 연기가 왔다.’
…….
멀리 있는 건물 옥상에서 해주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킬러 ‘언니’였다
킬러 ‘언니’가 해주를 죽이기 위해 사전 답사를 왔다.
아이 옆에 있는 저 여자가 엄마인 것 같은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잘 기억이 안 났다.
오늘은 일단 어디에 살고 있고 어디를 주로 다니는지 기본적인 동선 확인만 하기로 했다.
그 아이가 사는 곳은 단독건물 3층인데 1층은 편의점, 2층은 사무실이 있었다.
건물이 특이한 것이 대지는 넓은데, 3층 밖에 안 올렸고,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양쪽으로 따로 있었다.
지하는 안 만들었는지, 아니면 지하로 들어가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2층 사무실은 ‘다 찾는 세상’이라는 회사 간판이 보였는데, 전혀 어떤 회사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늘은 일단 멀리서 보는 것만 하고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건물 구조를 살펴보기로 했다.
빨간색 포르셰 스포츠카의 핸들을 잡은 네일 숍 사장은 생각했다.
‘우울증에 빠진 엄마가 아들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