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이코패스 소년은 킬러를 알아본다

물품 보관함 (46)

by 민정배

물품 보관함 (46)


긴 하루가 지나가고 도저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새 날이 밝아왔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아직 존재하기에 긴장의 끈을 유지하고자 오늘도 김 회장은 서울 자택이 아닌 양평 별장에서 하루를 지냈다.


오늘부터 양현모는 자신의 아내인 진자경을 미행할 것이고 바로바로 보고하기로 했다.

이제는 덤프트럭 기사와 공치수, 이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고민 중이었다.


일단 이충은 와이프와 접촉하는지에 대해 지켜보면 될 것 같았고…

공치수는 사진 몇 장으로는 의심이 풀리지도 않았고 보안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골방에 있게 하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보안이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초능력 소년 해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정해야 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김 회장은 해주에게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굿 모닝… 성주에서 만난 아저씨야..

몸은 좀 어때?….

괜찮으면 오늘 좀 만날 수 있을까?”


해주의 답장을 기다리며 이진성 실장을 호출했다.


당분간 이 실장을 비롯한 가드팀들은 여기 양평에서 비상대기 하는 중이었다.


“이충 상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내색하지 마시고 지켜보시죠?”


역시 이 실장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이충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사진 몇 장이 다였다.


“운전기사는 좀 씻기고 옷도 갈아입히고… 먹을 것도 좀 주고… 대기시켜..

꽁치는… 음..

누구한테 꽁치를 좀 보여줘야 해…그러니까.

일단 계속 거기 둬..”


“성주에서 만난 그 꼬마 말입니까?”


김 회장은 이진성 실장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실장이 그 아이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니…


“응… 어떻게 알았냐?”


“아닙니다.

그냥 집었습니다. 첫 만남부터 보통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느꼈습니다.

회장님의 암살시도도 그 아이가 말해 준 거 맞습니까?


“응.. 맞아.

어떤 신기가 있는 아이 같아…

죽음을 보고 예견하는…

더 이상은 알려고 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운전기사한테 사모님 목소리 확인 안 하셔도 될까요?”


“눈치를 챘는지 오늘 아침도 전화를 안 받는다.

그렇다고 지금 집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함정에 빠지는 위험일지도 모르고…

일단 양현모가 뭐라고 보고하는지 좀 지켜보자.

내 생각엔 조만간 마누라가 뭘 흘릴 것 같아.”


김 회장은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두르지 않는 냉철한 신중함이 보이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꽁치한테 가 보자… 뭐 좀 확인할 게 있어.”


골방에 내려간 김 회장과 진성은 아직 잠에서 덜 깬 공치수를 만났다.


“헌책방에는 직접 네가 봉투를 건 낸 거야?”


“아닙니다.”


“그러면?”


“헌책방의 위치는 모릅니다. 가상메일을 받아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어떻게?”


“정해준 물품 보관함에 넣고 거기서 하라는 대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작업자는 지정했나?”


“언니가 최고라는 말이 있어서….

언니를 우선 지정했습니다.”


“언니?”


김 회장은 오래전 언니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어린놈이 잔인하고 빈틈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자신의 딸을 죽인 킬러는 ‘언니’였다.


……………………………………



진자경의 내연남이 그랬다.


“만약 1차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 바로 2차 계획으로 넘어가야 해!

우물쭈물하다 간 당신 남편 손에 우리 둘이 다 죽어.

그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 말이지… 알아들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매우 중요해.

진짜 잘 들어!

김 회장이 살아 돌아오면, 아마도 전부 양평별장으로 소집될 거야.

이 폰으로 매일 연락을 할 게… 그런데

무조건 하루라도 나에게 연락이 안 오면, 여기 쓰여 있는 대로 해…

그래야 당신이 살고, 나도 살고, 김 회장 돈도 전부 당신 것이 되는 거야.

절대 잊지 마!”


내연남이 중요하다고 한 메모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내가 준 봉투를 들고 KTX 용산역 물품 보관함에 간다.

반드시 KTX 용산역이다. 물품 보관함이 찾기 어려우면 여자 화장실을 찾는다.

비어 있는 보관함에 봉투를 넣고 비밀번호 설정 버튼에 380038 입력한다.

물품 보관함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010-0000-0000 전화번호에 문자를 넣는다.

문자 내용은 당신이 봉투를 넣었던 보관함 번호와 비밀번호이다.

5번 물품 보관함에 넣었으면 5 한 칸 띄고, 비밀번호 380038

5 380038 이렇게 문자를 보낸다.

380038은 우리 코드번호 임 / 잘못 쓰면 안 됨

보관함 번호 쓰고 380038 / 메시지 보낸 후 바로 삭제한다.


자경은 내연남과의 연락이 끊기고도 그렇게 강조한 행동 매뉴얼을 이틀이나 지나서야 봤다.


왜냐하면 첫날은 피부 마사지 예약일과 겹쳤기 때문이고 둘째 날은 그냥 잊어먹었었다.


KTX 용산역에 도착한 자경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자 화장실을 물어서 간신히 물품 보관함에 도착했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자경은 메모지를 보았다 말았다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주변에 물품 보관함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았고, 결국 그 남자의 도움으로 봉투를 무사히 보관함에 넣었다.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연남의 가장 큰 실수는 자경에게 너무 어려운 미션을 준 것이었다.


………………………………………



자경을 미행하고 있던 양현모는 그녀의 옆에서 친절하게 물품 보관함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고, 자경이 하는 모든 행동을 바라보았다.


자경이 떠난 후 양현모는 근처 편의점에서 비슷한 사이즈의 봉투와 풀을 사 온 후

비밀번호 380038의 물품 보관함을 열었다.


봉투 안에는 김 회장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 뒤에는 양평 주소지와 ‘언니에게 40’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현모는 바로 앞 뒷면을 사진 찍은 후 새 봉투에 넣어 다시 보관함에 넣었다.

비밀번호는 외워둔 380038 그대로 했다.


현모는 지금 이 상황에서 자경을 미행하는 것보다 물품 보관함에 있는 김 회장의 사진을 누가 어디로 가져 가는지가 더 중요할 것 같아서 그 앞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택배 기사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봉투를 픽업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출발했다.

양현모는 특기를 살려 조용히 미행했다.


그 남자가 도착한 곳은 아현동 가구골목에 있는 어느 오래된 중고서점이었다.


현모는 어릴 적 가 본 적이 있는 헌책방이 요새도 있나 의구심이 들었으나,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헌책방 주변을 둘러보고 난 뒤, 그곳이 한눈에 보이는 골목 맞은편 커피숍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이 상황에서 헌책방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지 의문이었고 또 김 회장이 수시로 보고하라고 했기에 현모는 자경이 물품 보관함 앞에 서 있는 모습과 봉투 안에 들어있던 내용의 사진을 김 회장에게 전송하고 통화를 했다.


“제가 보낸 핸드폰 사진 확인하셨습니까?”

“네. 그런데 이게 뭐죠?”


“사모님께서 KTX 용산역 물품 보관함에 봉투 하나를 넣었습니다.

제가 보낸 사진은 그 안에 들어 있던 거고요.”


김 회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사진은 어떻게 했나요?”


“네, 일단 누가 픽업해서 어디로 가는지 알아봐야 할 거 같아서 다른 봉투에 넣어 다시 물품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그래서요?”


“잠시 후 어떤 사람이 픽업을 해서 아현동 중고서적 파는 곳에 전달했습니다.”


“중고서적이요? 지금 양사장님 어디에 계신가요?”


“네, 지금 헌책방이 보이는 커피숍에 있습니다.”


“네? 헌책방이라고 하셨나요?”


“네 가게 유리에 헌책방이라고 이름이 붙어있네요.”


되돌릴 수 없는 깨진 유리잔의 물이 김 회장의 머리를 적셨다.

물품 보관함에 다시 넣지 않고 통째로 자기에게 가져왔어야 했는데…


봉투는 자신을 죽이라는 청부살인 오더였는데 이런 경우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헌책방이 보이는 곳이라고 하셨죠?”


“네”


“봉투를 픽업하러 아마 누가 올 겁니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나오면 따라 가 주세요.

어디 사는 사람이며,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쩔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은 벌어졌고… 지금 최선은

킬러 ‘언니’의 얼굴과 어디 사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 먼저 선수를 칠 수 있으니까….


“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네요.”


“그냥 양 사장님 직감으로 수상한 사람만 일단 미행에 봅시다.

사진이랑 사는 곳을 파악해서 알려 주세요.”


김 회장의 생각은 양사장이 만약 언니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면 헌책방을 박살 내더라도 그놈을 반드시 잡는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설마설마했는데 이 모든 것에 와이프가 관련되어 있었다.


방금 아내가 자신을 죽이라는 주문을 킬러 ‘언니’ 한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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