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이코패스 소년은 킬러를 알아본다

벌새의 과거 (53)

by 민정배

벌새의 과거 (53)

라면상자 안의 아기가 살아있는 채로 발견된 것은 기적이었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어느 술 취한 노숙자가 쓰레기통을 뒤지다 아기를 발견했다.

이름 없는 아기는 이렇게 처절하게 세상에 인사를 했다.


아기는 보호소 담당 공무원이 임시로 지었는데 그 이름이 오숙희였다.

운이 좋은 애들은 늦어도 학교 다니기 전에 입양이 되어 이름도 바꾸고 했는데 그런 애들은 생긴 게 귀엽거나 이뻐야 된다는 사실을 숙희는 만 4살 때 알아차렸다.

구멍 뚫린 마음으로 입양이라는 희망을 포기한 초등학생 숙희는 또래 여자애들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다는 이유로 또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운동부 생활을 했었다.


운동을 하면서 돈 많은 애들 부모들이 가져오는 간식을 챙겨 보육원 동생들과 나눠먹는 소소한 재미가 그나마 느끼는 숙희의 유일한 행복이었다.


육상과 역도를 배운 숙희는 정식으로 학교장의 추천으로 레슬링부가 있는 다른 지역 중학교로 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보육원을 떠났다.


한 끼 식사와 잠자리 제공이 주는 따뜻함의 고마움을 느끼며 어린 숙희는 체육관 숙소에서 홀로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고통에 희망을 하나씩 쌓으면서 전국체전 입상만 하면 대학교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운동을 한 숙희는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좌절의 골은 너무 깊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고 희망은 그러데이션 색처럼 점점 검어졌다.


세상이 온통 먹으로 있을 때 한 줄기 바늘구멍으로 빛이 들어온 건 행운이었다.

숙희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학교장의 추천으로 사격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갈 수 있었다.

사격은 그녀의 또 다른 생명의 끈이었지만, 사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숙식해결을 위한 실업팀 입단이 좌절되면서 20살 숙희는 생계를 위해 군 입대를 할 수밖에 없었고 군 생활 10년 만에 특임단 상사 특채로 해외 파견 부대에 차출 되었으며, 그 후 비밀 특수 공작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숙희의 인생은 한마디로 전쟁터였다.


……………………………


예맨에서 급성장 중인 시아파 반군은 중동안보에 큰 파급을 불러왔다.

미국의 입장에선 예맨 반군이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조직인 알하크하고 손을 잡고 규모가 커질까 봐 눈엣 가시였다.

합법적 예맨 정부를 인정하는 미국이지만 외교관계가 없는 상항이라 군사행동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용병조직 블랙워터였다.


미군이 운영하는 비밀 용병조직 블랙워터는 주로 소수의 무장 전투원을 운영하며,

정치적 입장이 애매하거나 부담스러울 때 요인 암살 및 기지 제거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 실패 시 미국의 개입 흔적은 전혀 남지 않았으며, 투입 인원 역시 아시아, 아프리카계 용병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블랙워터 멤버 숙희는 두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프랑스 여권 소피버드란 이름으로 예맨에 입국했다.

폭탄 및 총을 비롯한 모든 장비는 항구를 통해 들어와 있고 팀원들과 만나 이번 작전을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버드의 팀은 총 다섯 명

동양인이 세 명이나 있어 팀 이름이 옐로 데블이었다.


팀장은 숙희의 한국 특수 부대 근무시절 선임이었으며,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선임의 권유로 제대 후 블랙워터에 합류를 했다.


팀원들은 실제 본명을 모르고 각자 예명으로 활동했고 그때 만난 사람이…

마이클이었다.

중국말을 하는 마이클을 당연히 중국계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그날의 작전은 완전 실패였다.

예맨 사나 북쪽 암란에 위치한 군사학교를 파괴하고 학교장을 죽이라는 임무였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정보 오류로 군사학교가 아니라 대대급 반군 부대였다.

누구의 실수 인지는 몰라도 진입하자마자 발각되어 다 죽고 숙희와 팀장만 살아 돌아온 것이 기적이었다.


이때 숙희는 박격포탄에 날아가는 마이클을 마지막으로 보았고 날아든 파편에 엉망이 된 팀장을 간신히 업어 데리고 나왔다.


이것이 옐로 데블의 마지막 임무였다.


………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죽은 줄만 알았던 마이클이 죽다 살아난 팀장을 찾아왔다.

왜 마이클이 이모부를 찾아왔는지 그때는 몰랐었고, 단지 살아 돌아왔다는 반가운 마음에 벌새는 옛 전우인 마이클을 만났다.


마이클 말에 의하면 죽어가던 자신을 예맨 반군이 살려줬다는데 그 이유는 마이클도 모른다고 했다.

한 치의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이 숙희의 실수였다.


짧은 인연인 줄 알았는데 긴 이별인 줄 모르고 벌새는 처음 해보는 사랑을 운명이라 여겼다.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몸을 아기새 깃털 마냥 어루만지는 섬세한 사람이 마이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함없이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잠자고 있는 벌새의 목에 마이클이 칼을 들이대었다.

벌새의 몸이 먼저 반응해서 마이클을 죽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보고 뿜어 나오는 붉은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죽을 뻔했다.


이모부는 마이클이 개종 후 예맨 반군의 지시로 그 당시 작전 투입한 자신과 버드를 죽이려 한 것 같다고 했지만 이것도 이모부의 생각이고 정확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였다.


벌새의 사랑은 바람처럼 스쳐가며 빛바랜 칼이 되어 돌아왔고, 생각 없는 시간은 흐르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죽어야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그냥 죽었어야 하는데…

기계처럼 몸이 반응해서 그만…

아름다운 마감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말라 갈라진 사막의 땅처럼 삶의 의지를 버린 킬러 벌새가 인생의 끝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녀의 가슴에 한 방울 비가 내렸다.


그 비는 작은 숨결이 되어 벌새의 몸 안에 새 생명의 심장을 만들었다.


'아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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