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이코패스 소년은 킬러를 알아본다

진자경과 만나는 자가 배신자다. (55)

by 민정배

진자경과 만나는 자가 배신자다. (55)



봄이 오려고 아침부터 차가운 하늘에 겨울비가 내렸다.

바람을 타고 창을 때리는 빗소리는 김대현 회장의 시간을 째깍째깍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시간이 없었다.

킬러는 오고 있고 배신자의 존재는 분명했으나, 형태는 보이지 않고 아침 안개 너머로 윤곽만 남아 김 회장의 초조함을 재촉했다.


김 회장은 지금은 희미한 것은 버리고 확실한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공치수와 이충을 동시에 거리를 두고 따라간다.

둘 중에 진자경을 만나는 자가 배신자다.


진자경은 ‘다 찾는 세상’ 양현모 사장이…

공치수는 성주에 동행했던 가드 팀 중 한 명이…

이충은 이진성 실장이 한다.

오후가 오기 전에 배신자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죽음의 문턱에서 불륜 의혹을 폭로한 공치수는 양평 별장에서 풀려나왔다.

의심의 골이 아직 메워지지 않은 상황에 돌출행동보다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더 나아 보였다.

하지만 우선 확인해야 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양평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가 있는 우체국으로 향했는데

동전도 전화카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렵사리 동전을 구해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끝내 상대방과 통화를 하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번호가 통화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바심이 평정심을 앞질러 핸드폰 통화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두루 살펴보았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의심스러운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리지 말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


서울 사무실에 출근한 이충 상무는 한가한 오전에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지금까지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아침에 공치수가 풀려났다고 들었다.

처음에 김 회장은 꽁치가 범인이라고 잡아 놓으라고 했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땅에서 꺼내고 또 하루 만에 풀어줬다.

연지가 죽고 김 회장을 노리는 암살 시도의 배경에 꽁치를 의심하더니 무엇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일까?’


이충은 누군가에게 전화 통화를 하려고 했으나, 지루한 연결음만 계속 들렸다.

바쁜 건지 아니면 자신의 전화를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돼 가는 건지 아무래도 직접 만나 물어보는 편이 나을 듯싶어 서둘러 핸들을 잡고 출발했다.


운전 중인 이충은 자신의 차량에 GPS 그리고 구두에 도청 장치가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도 못했다.


……………


그 남자가 하라는 대로 다했다.

봉투에 뭐가 들었는지 몰라도 어렵게 보관함을 찾아 문자도 보내고 할 건 다 했다.

이제는 조용히 기다리면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상황인지 누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부터 이상한 전화가 왔지만 그 사람이 절대 어떤 전화도 받지 말라고 해서 참았다.

가만히 집에만 있을 생각을 하니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진자경은 오후에 마사지 예약을 하고 백화점 쇼핑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


차량 와이퍼가 삐끗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침비를 쓸고 갈 때마다 잠시나마 세상이 또렷해졌다.

진자경의 외출을 기다리는 양현모의 지루함은 이제는 편안한 안식이 되었다.

오전이 다 갈 무렵 대문이 열리고 우산을 쓴 진자경이 나왔다.


운전기사 없이 홀로 어딘가를 가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김 회장에게 진자경이 집에서 나왔다고 문자를 했다.

백화점을 방문한 진자경을 양현모의 카메라가 계속 따라다녔으나, 그녀는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자기 남편 죽이라고 오더 넣은 여자치고 참 태평이었다.


…………


이충 상무를 도청 중인 이 실장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이 상무가 어디로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는지 더 이상의 통화는 하지 않고 바로 차량으로 이동했다.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제일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런데 공치수를 미행하는 직원한테 연락이 왔다.

그가 양평 별장에서 나오자마자 핸드폰이 아닌 공중전화를 했다고 했는데 의심스러운 행동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과연 누구와 통화하려고 공중전화를 했을까?

설마? 이충 상무?’


만에 하나 공치수와 이충 상무가 연결되어 있다면 큰일이었다.


진성은 직원에게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 들키지 말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를 하라고 했다.


…………


봄날의 햇살은 오지 않고 오후가 되어도 겨울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 회장은 아내가 아직까지 누구와 통화하거나 만났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


이충은 사무실 출근을 했다가 지금 차량으로 이동 중이라고 하고, 공치수는 양평에서 나오자마자 공중전화를 시도했다고 했는데 입모양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통화는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핸드폰이 아닌 공중전화를 시도한 것은 일단 의심해 볼 여지가 있었다.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틀림없이 누구든 진자경과 컨택을 할 줄 알았는데,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 진자경이 해외로 도피하거나 잠수를 탄다면 큰 일이었다.

양현모에 의하면 아내는 택시를 타고 백화점에 갔으며, 쇼핑과 홀로 점심을 먹고 지금은 마사지샵에 있다고 했다.


어쩌면 진자경은 불륜은 했을지는 몰라도 물품 보관함에 넣은 봉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남편을 죽이려는 여자치고는 단순하고 어리석은 여자라고 해도 너무 태평했다..


김 회장은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의 신호음이 가고 드디어 진자경이 전화를 받았다.


“당신 왜 이렇게 통화하기 힘들어?”


“어… 나 마사지샵”


“새로 산 건물 명의 당신 이름으로 하려고 하는데 자필 사인 필요해…

양평 주소 찍어줄 테니 이리 좀 와?”


“나 차 없어… 오늘 정기검사받는 날 이래… 당신이 여기로 차 좀 보내..”


아내의 목소리는 미세한 떨림의 진동을 내더니 건물을 준다고 소리에 바로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태연하게 전화를 받고 저리 좋아하는 것을 보니 진자경은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김 회장은 처음부터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었는데, 쓸데없이 시간을 너무 소비했다고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그녀가 도착할 것이며, 누가 보관함에 봉투를 넣으라고 했는지 물어볼 작정이다.


…………


살아있는 전설인 오숙희는 생각했다.


‘게이 XX가 죽을 라고 환장을 했구나’


틀림없이 한번 더 눈에 띄면 죽인다고 했는데, 세월이 죽음의 기억을 희석시켰는지, 아니면 시간이 황당한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 킬러가 겁도 없이 찾아왔다.


여기를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해주가 모르게 그놈을 죽이고 시신 처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혹시 그 게이 XX가 해주를 납치라도 한다면 큰 일이었다.

만약을 위해 해주를 어디 보냈으면 좋겠는데, 어디 마땅한 데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직 개학을 하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아무 데도 못 가게 할 수도 없고 당분간 눈 안에 둘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차라리 어디 한적한 시골에 여행을 간 다음, 따라온 놈을 죽인 다음 묻어 버리는 방안도 좀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았다.


오숙희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그놈을 절대 살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


엄마는 무슨 이유인지 골프 연습장도 안 가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팽팽한 긴장감이 날 선 기류가 되어 온 집 안을 맴돌았다.

혹시 엄마도 어떤 위험을 감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울에 비친 해주의 검은 연기는 어제보다는 엷은 색을 띠고 있었으나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하얀 연기는 2층 아저씨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해주는 믿었다.

2층 아저씨가 요사이 누구를 만났는지 알 수만 있으면, 어떤 연결 고리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침부터 사무실 문이 잠겨 있었다.

어제 누가 노리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별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것이 어쩌면 오늘 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림없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


킬러 ‘언니’는 한 건물에 사는 두 놈은 천천히 죽여도 될 일을 초조함에 등을 떠밀리듯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 영향인지 헌책방 오더까지 서두르고 있었다.


새벽부터 양평 별장을 바라보고 있는 언니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타깃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를 저버리고 타깃은 오후가 되어도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계산된 숨결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타깃을 처리해 온 언니는 이번에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는 생각이 엉켜 있었고 조급함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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