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시작 (56)
배반의 시작 (56)
(1 년 전)
대현 건설의 임대 사업과 건물 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공치수는 회장님의 사모님인 진자경의 호출을 받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걸음에 달려갔더니, 투자 관련해서 자문을 요청했었다.
김 회장의 세 번째 와이프인 진자경은 돈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남편 몰래 여기저기 투자를 하는데, 천성이 어리석은 여자라 손대는 일마다 손해를 보았다.
공치수는 경매에 나온 지방 호텔을 인수하는 사업 제안을 하면서 여러 차례 그녀와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처음부터 공치수가 딴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어리석은 여자가 색도 밝히다 보니 앞 뒤 가림 없이 본심을 흘리고 다녔고, 어떻게 보면
공치수가 유혹에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변함없이 땅 보러 가는 핑계로 만나 점심에 술을 하고 자연스럽게 호텔에 갔다.
서로를 품은 후에 담배를 한 대 피우려 몸을 일으키는데, 진자경이 공치수를 안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에구…. 딸년 하나 있는 거 팍 죽어버리고, 남편 죽고 나면….
다 내 돈인데……”
이것이 배반의 시작이었다.
…………
김 회장을 작업하기 위한 공치수의 계획은 교통사고였다.
한 밤의 인적 없는 곳에서 발생한 사고가 가장 자연스럽고 또 신규로 가입한 생명보험은 그들에게는 덤이었다.
만에 하나 의심을 하는 이들을 위해 오래전 경쟁 조직 황규파의 황사장을 떠오르게 만들 준비도 했다.
비밀 보장을 위해 조직 내 인원은 배제하고 사촌 동생으로 하여금 모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거사 장소를 정하지 못했고, 또 회장의 외동딸을 제거하기 위한 아이디어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검은 커튼의 장막처럼 막막하기만 할 때 기회는 상상도 못 한 곳에서 작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김 회장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대현의 껄끄러운 일을 전담 처리하는 그이기 때문에 이번 일도 비밀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아주 높은, 위에서 내려온 살인 청부였다.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깃을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후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하는 시나리오까지 전달받았다.
불법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김 회장의 스타일로 미루어 봐서, 이번 일은 거절할 수 없는, 절대 해야 하는 일임을 직감했고 김 회장의 안색과 음색으로 보아 그냥 VIP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사진 속의 여자는 티브에서 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
김 회장은 외부처리를 하되 절대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고, 킬러는 최고로 쓰라고 했다.
공치수는 말로만 듣던 헌책방의 문을 두드렸다.
공치수는 잘만 하면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
공중전화박스 안의 공치수는 빗소리는 들리지 않고 숨이 막히는 침묵 속에서 답답함이 초조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벌써 한 시간째 전화기를 잡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끝내 똑같은 연결음만 돌아왔다.
헌책방에 오더가 들어갔으면 몸을 낮추고 기다려야 하고, 만약 계획이 실패했으면 도망을 가야 했다.
막연한 기대가 불안정한 불안으로 변해 공치수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공치수는 자신의 계획이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다시 한번 복기를 했다.
제일 먼저 조직의 이인자인 이충을 제거할 목적으로 호텔을 출입하는 그와 진자경과의 불륜 사진도 조작 완료했다.
그 이후 막막했던 어둠 사이로 한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VIP 오더가 내려왔고 생각 하나가 문득 공치수의 머리에 들어왔다.
‘봉투 바꿔치기’
진자경에 의하면 회장의 딸인 연지가 성주에 있는 한옥스테이로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타깃은 바로 한수연에서 김연지로 바뀌었다.
헌책방에 최고라고 소문난 언니를 지정했고, 킬러 ‘언니’는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 완벽 자체라고 들었다.
일주일 만에 여행지에서 김연지는 죽었고, 김 회장의 비자금으로 잔금 처리도 했다.
여기까지 완벽했는데…
연지의 시신을 확인하러 간 김 회장은 털 끝하나 다치지 않고 나타났었다.
수신호를 맡았던 사촌 동생으로부터 덤프트럭이 성공했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죽었으면 죽었다고, 다쳤으면 병원에 있다고 연락이 와야 하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가 멀쩡하게 나타나 양평으로 전원 소집을 했다.
그렇다면 차량에 타지 않았다는 말이고, 사전에 정보가 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김 회장은 알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 샐 데가 없는데 귀신같이 피했다.
만에 하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김 회장이 멀쩡히 살아 돌아온다면 내부자들을 의심할 것이고 헌책방 최초 주문자인 자신을 우선 의심할 것이 예상되었다.
최후의 수단도 준비해 두었다.
이충과 진자경의 불륜사진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진자경이 2차 계획인 헌책방에 오더만 제대로 넣으면 상황은 종결이었다.
그런데 만약 허술한 진자경이 최종 계획인 헌책방 살인 주문에 실패했다는 가정하에 김 회장이 그녀를 잡아 고문이라도 하면 전부 다 불 여자였다.
그렇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공치수는 호흡을 가다듬고 심박수를 줄이며 차분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진자경이 문제였다.
지금 그녀의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헌책방에 주문을 넣었던 아니던 이 여자가 사실대로 불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안갯속에서 방향을 잃고 불안이 뇌를 지배하고 있을 때 공치수의 머리에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양현모가 김 회장의 지시로 진자경을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는 기대감에 양현모에게 전화를 했다.
“야! 이 새끼야!… 너! “
“형님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진정이고 자시고 없어.
야 이 새 X야…
돈 떼먹고 토낀 X이 김 회장 딸이고,
부하직원하고 바람 난 X이 김 회장 와이프냐?”
공치수의 통화는 양현모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죽이고 싶은 분노가 치밀었지만 화를 삼키고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꼬여버린 상황이 자칫 잘못 처신하면 김 회장에게 죽을 수도 있고, 또 킬러의 손에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형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만나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말씀드릴게요.”
“시끄러워 이 개 XX야!…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제발 제 말 좀 들어보세요.
혹시 지금 사모님 미행 중 아닙니까?”
“뭐.. XX야? 그건 왜?”
“형님… 제가 김 회장에게 형님이 찍은 불륜 현장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알아. 개 XX야…
김 회장 여기 와서 직접 사진 보여 주더라.”
“형님.. 그 사진 때문에 지금 사모님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불륜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저 때문에 죽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지금 사모님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를 안 받으십니다.”
순간 양현모는 공치수가 사모님과 통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는 순간
김 회장이 한 말이 생각났다.
‘진자경이 만나거나 통화하는 자가 그놈이다.’
양현모는 공치수가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했다.
“사모님 하고 연락을 해야 한다고?”
순간 공치수는 자신의 직감이 맞다고 확신했다.
양현모는 지금 진자경을 미행 중인 것이었다.
자신과 연락이 안 되면 바로 매뉴얼대로 물품보관함에 봉투를 넣으라고 했는데, 게으른 그녀가 만약 하루이틀 늦어서 미행 중인 양현모가 그것을 김 회장에게 보고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형님
지금 사모님 미행하는 거 맞죠?
지금 사모님 어디 계세요?”
“내가 그걸 왜 얘기해야 하지?”
“형님 제발…
잘못되면 사모님 죽어요..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지금 검은 세단 타고 이동 중이다.
됐냐?”
양현모는 김 회장에게 진자경이 이동 중인 차량에 대해 보고를 했었고, 그 차가 김 회장의 지시에 의해 그녀를 픽업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통화가 끝나면 공치수가 사모님의 위치를 물어봤다는 것을 김 회장에게 추가 보고를 할 작정이었다.
…..
공치수는 검은 세단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뭔가 일이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형님…
감사합니다. 조만간 찾아뵙고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치수는 양현모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공중전화가 아닌 자신의 핸드폰으로 진자경에게 통화를 했다.
지금 진자경이 양평으로 가면 끝이었다.
“제발… 제발… 받아라.”
“여보세요?”
한참의 통화 시도 후 드디어 진자경이 전화를 받았다.
“너 지금 양평 가는 거지?
당장 내려…
거기 가면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