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이코패스 소년은 킬러를 알아본다

언니가 죽다. (64)

by 민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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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죽다. (64)



가볍게 노크한 뒤 ‘다 찾는 세상’의 문을 연 공치수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형님! 형님, 저 왔어요!”


그곳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밖의 날씨와 달리 을씨년스럽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넘어 한기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공치수는 슬그머니 웃옷 속주머니에 손을 넣어 숨겨둔 칼날의 서늘함을 확인했다.


이때 공치수의 앞으로 김 회장과 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나타난 김 회장과 이 실장을 본 공치수는 너무 놀라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아니 회장님이 여기에 어쩐 일로……”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들렸어.

내가 양사장한테 시킨 일도 있고 해서.

넌 여기 무슨 볼일로 왔냐? ”


공치수는 냉소적이며 빈정 섞여있는 김 회장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지금 왜 그가 여기에 있을까 라는 생각보다 빨리 도망부터 가야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열려 있는 문을 통해 계단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누가 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도망가야 하는데 계단은 막혀 있을 것이고 어디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오전에는 어디 갔었어?”


“병원 다녀왔습니다. 뼈 부러진 데는 없다고 합니다.”


“우체국 병원?”


망했다.

김 회장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무조건 도망을 가야 했다.

방법은 오직 하나, 2층 창문을 깨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는데 운이 좋아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이고 119가 온다면 살 수도 있었다.


………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해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치수의 몸에서 나는 연기였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틀림없이 하얀 연기를 달고 있었는데 이제는 검은 연기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검은 연기는 해주의 눈에 익숙한 모양의 형태로 공치수의 목 뒤에서 역동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검은 연기로 바뀐 것으로 보아 누굴 죽이러 왔다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공치수의 검은 연기는 점점 커지더니 이때까지 봐 온 어떤 것보다 몇 배나 더 거대하고 무섭게 나풀거렸다.

심지어 검은 연기 때문에 뒤에 뭐가 있는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이때였다.

해주의 본능이 하얀 연기를 감지했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킬러가 온 것이었다.


“킬러가 와요! 킬러!”


해주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보이지 않는 꼬마의 외침에 공치수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소리 없이 누군가 들어왔고 인기척에 공치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공치수가 들은 것은 휙 하는 소리였고 그와 동시에 그가 본 것은 형광등 빛에 반짝이는 무엇이었다.


언니의 칼은 슬로 모션처럼 공치수의 눈 밑, 정확히 그의 턱 아래를 지나갔다.


반짝거림이 지나간 공치수의 목에는 빨간 분수가 눈부시게 수를 놓았다.


삭은 통나무가 넘어지는 것 마냥 힘없이 고꾸라진 공치수는 자신의 목이 언니가 휘두른 칼에 베였다는 것도 느끼지도 못했다.


공치수는 진자경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죽어 갔다.


해주의 외침 후 공치수의 목이 반정도 잘리는 상황까지 너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김 회장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난데없이 언니가 나타나서 공치수를 죽인 것이었다.


부상으로 인해 오늘 2차 공격은 없을 거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언니는 자신을 미행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완전한 오판이었고 해주의 말이 맞았다.


언니는 하얀 신발에 공치수의 피가 묻는 것이 싫어서 까치발로 양현모를 찾았다.


‘이 신발을 신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거 리미티드 에디션인데…”


아끼는 신발을 바라보며 사뿐히 걸어가는 언니의 눈에 갑자기 김 회장이 보였다.

처음에는 잘못 본 건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런 운수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스트레스 풀려고 왔는데, 실패한 줄 알았던 살인 청부 타깃이 여기 있었다.


퍼즐이 풀렸다.

탐정 놈에게 자신을 미행하라고 시킨 놈은 타깃이었다.

아니라 해도 상관없었다.

일거양득이라고 해야 하나?


천천히 타깃을 향해 걸어갔다.

평상시 언니는 상대를 제압할 때 스피드를 매우 중요시했지만, 지금은 엽총 파편을 맞은 종아리가 조금 불편도 했고, 사실 이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김 회장은 언니가 자신을 미행해서 여기까지 오리라 생각을 못한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이미 킬러의 실력을 보았으니 이제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진성은 이미 부상을 당한 상태라 김 회장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방검복을 벗지 않았고 허리춤에 연장도 있었다.


이때 계단을 타고 외부에 있던 인원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세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으나, 마치 기간병이 훈련병에게 칼 사용 교범을 가르치는 것처럼 천천히 또박또박 제압했다.

지금 언니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장난치듯이 여유를 보인 것은 언니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진성은 엽총을 차 트렁크에 두고 온 것을 후회했다.

김 회장의 근접 경호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너무 안일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김 회장과 꼬마가 계단으로 탈출할 수 있게 공간을 확보하고 자신이 언니를 최대한 붙잡고 있어야 했다.


이 실장은 탕비실에 있는 나무 도마를 들고 김 회장을 뒤로 밀치며, 킬러 ‘언니’를 향해 나아갔다.

이미 언니의 실력을 봐서 두려웠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무 도마에 언니의 칼이 박혀 안 빠져나온 다면, 승부를 걸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서라, 목숨은 하나야.

너도 알다시피 난 함부로 사람 안 죽여.

특히 너희처럼 목숨 걸고 일하는 애들은…”


언니는 평소와 달리 서둘러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 진성에게 말부터 걸어왔다.


진성은 언니의 말을 받아 주지 않고 대신 눈빛으로 김 회장과 해주한테 자신이 시간을 끄는 동안 피신하라고 말했다.


“정 그렇다면, 빨리 끝내줄게.”


언니는 이 한마디를 하고 진성에게 다가왔고, 진성은 다가오는 언니의 스텝을 응시하며 자신도 준비 자세를 갖추었다.

시간을 끌어야 했기에 진성은 먼저 공격을 하지 않고 방어에 주력을 다했다.

양평 별장에서는 너무 성급하게 대응해서 언니에게 쉽게 부상을 당했지만, 지금은 언니의 공격을 잘 받아내었다.

하지만 언니는 진성의 의도를 읽었는지 찌르기보다는 베기 위주로 미소를 띠며 공격을 해 왔다.


이 실장이 언니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는 그때 김 회장은 피신 대신 정면 공격을 선택했다.


진성이가 언니의 칼을 쳐내거나 도마에 박히게끔 하면

자신이 끝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양 사장!

어서 해주 데리고 피신하세요”


김 회장은 이 짧은소리를 내고 왼손잡이 이 실장의 우측에서 연장을 휘둘렀다.


양현모는 해주를 데리고 피신을 해야 하는데 출입구 주변에서 싸우고 있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저 두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성이 언니의 공격으로 비틀거리고 김 회장이 다시 자세를 정비하는 동안 공간이 보였다.

이때다 싶어 현모는 의자를 들고 돌진했다.

의자에 밀려 킬러가 넘어진다면 그다음은 이 실장과 김 회장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순간 당황했다.

의자를 들고 덤벼드는 탐정 놈을 예상 못했다.

다친 다리는 스피드에 지장이 있었고 구석으로 몰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여유와 즐거움을 잠시 접고 정신을 차렸다.


구석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언니는 달려오는 의자를 툭 치고 피하면서 절뚝거리면서도 집요하게 덤비는 진성을 밀어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균형을 잃은 현모의 머리를 발차기로 가격했다.


넘어지는 반대 방향에서 날아오는 정확한 킥에 턱을 가격 당한 현모는 그 자리에서 나가떨어지면서 문 쪽으로 도망가려는 해주와 부딪혔고, 두 사람은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진성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부상당한 어깨와 다리로 언니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마를 잡은 손을 칼로 베인 진성은 도마를 놓쳤고 바로 이어지는 언니의 발차기에 일어나지 못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타깃뿐이었다.

언니는 여유를 찾으며 타깃이 있는 곳으로 웃으면서 다가왔다.

오십만 불의 행운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방금 그 돈을 지불할 사람을 자신이 죽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


오숙희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 계단을 지하실로 가는 일에만 주로 이용했지, 거기를 통해 2층으로 내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건물 지을 때 만약을 대비해서 만들기는 했어도 입주한 사람한테 비밀스럽게 갈 일이 없었다.


2층 비밀문을 열어 보니 기가 막힌 것이 커다란 가구가 떡하니 앞을 버티고 있었다.


안에서는 벌써 난리가 났는지 쿵.. 쾅.. 쾅.. 소리가 들렸다.

지금 다시 3층으로 가서 아래층으로 가기에는 늦었다.

시간이 없었다.

지금 저기에는 자신의 아들이 있었다.

있는 힘을 모아 가구를 앞쪽으로 밀었다.

안 보이던 작은 틈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틈에서 칼 싸움하는 몇 놈이 보였다.


하나 둘 셋….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선 다음 온 힘을 다해 어깨를 던져 가구에 부딪쳤다.


…….


김 회장이 언니와 단둘이 남은 상황에서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그의 공격 패턴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쾅… 꽝…’


엄청난 소리와 함께 책장이 앞으로 쓰러지며 그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나타났다.


해주의 엄마 오숙희….. 과거의 벌새였다.


오숙희는 맨 먼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해주를 본 후 언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이… 게이 새끼야!”


그 소리를 들은 언니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이 목소리는 평생 언니를 악몽 속에서 괴롭혔던 그였다.


사무실 조명 속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던 먼지가 걷히더니 서서히 사람의 윤곽이 드러났다.


언니는 단박에 알아보았다.

벌새였다.


‘은퇴한 벌새가 왜 여기에?

…..

맙소사… 그녀는 재수 없는 꼬마의 엄마였어.’


언니는 그냥 본능적으로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엽총의 파편을 맞은 불편한 다리가 아쉬웠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악몽을 지우고 싶었다.

아니 지워야 했다.

이번 기회에 더 이상의 고통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박수가 증가했다.


베이기 전에 베어야 하고 찔리기 전에 찔러야 했다.

상대는 은퇴한 지 십 수년이 된 사람이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본능을 감싸자 손끝의 긴장감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퇴로가 열려 있는 계단을 통해 도망을 갔어야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언니는 벌새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더욱이 벌새의 손에 있는 총을 보지 못했다.


‘오늘 벌새를 죽인다….’


언니는 더 이상 생각과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슛’


오숙희의 손에 있던 글록에서 나온 총알은 소음기를 지나 언니의 이마를 정확히 지나갔다.


천천히 쓰러지는 언니의 눈은 예쁘게 울었고 그의 하얀 운동화는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최고의 운수 좋은 날은 언니의 생을 마감하는 날이 되었고, 원하는 방법은 아닐지라도 더 이상 악몽의 고통은 없게 되었다.


눈이 내리는 밤 언니는 하얗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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