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두 달간 7,077쪽을 읽으며

벽돌책 읽는 꿀팁

by 보라

1. 왜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가?

내 방엔 책장과 옷장, 책상뿐이다. 책장과 책상이 무려 방 넓이의 절반을 차지한다.

2026년을 맞이한 책장과 책상에는 여전히 2025년이 가득했다. 작년에 읽다만 책, 특히 벽돌책들이 한가득이었다. 내 분야가 아니어서, 당장 읽을거리가 더 급해서, 연말까지 미뤄둔 약속이 많아서, 등의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책들이었다. 2026년에 박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며, 케케 묵은 핑계를 해치우고 싶었다. 벽돌책 읽어치우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2. 어떻게 벽돌책 읽었는가?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빌려 읽기’다. 최근 경기도서관이 개관했다. 멋드러진 외관으로 홍보됐지만, 진짜 꿀팁은 그곳의 책들이 모두 신상이라는 점이다. 시범 운영 기간(작년 말쯤이었다.)에 갔을 때만 해도 책장이 허전했다. 1층부터 4층의 책을 쭉 둘러보는 데 채 1시간도 안 걸릴 정도였다. 적은 책이었지만, 책들을 보며 알았다. ‘와, 여기가 다 새 책으로 채워지겠구나.’ 그래, 고백하자면 빌려 읽기의 시작은 경기도서관의 멋, 특히 새 책의 유혹이었다.


도서관이 서점과 다른 점은 ‘책을 쟁여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말했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읽고 싶을 때 꺼내볼 책이 많은 것만으로도 이미 애독자로서 준비가 된 것이라고. 지갑과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이라면 이 전략이 먹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갑도 시간도, 특히 공간이 여유롭지 않다. (책장과 책상이 이미 꽉 찼다.) 그때 도서관에서 2권씩 책을 빌려서 2주의 대여 기간이 주어지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특히 인기 많은, 깨끗한 책이라면? 내가 반납하면 또 언제 이 책을 빌릴 수 있을지 모른다.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소유 경험만으로도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산다고 해도 안 읽고 책은 구석에서 나이들 거다. 이런 상황이 되니까 ‘그래, 조금만이라도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사자!’라는 자기합리화를 했다. 이게 벽돌책 뿌수기의 발단이었다.


빌린 책의 대여기간은 일종의 타임어택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못 읽으면, 심지어 조금이라도 못 보면 손해다. 관심 있는 부분, 궁금했던 부분이라도 보자는 마음으로라도 책을 펴게 된다. 여기서 웃긴 점은 막상 맛만 보자고 시작한 책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반납해야 되면 그때 아쉬움과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새로 사기에는 진짜 거의 다 읽었는데! 소장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 이런 감정이 쌓이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주어진 기간 안에 다 읽어야 한다는 다짐이 단단해진다. 축하한다! 도서관 벽돌책 깨기 전략이 먹히기 시작했다!


다른 노하우는 ‘일타쌍피로 만들기’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텝퍼를 막 밟을 때가 있었다. (새해 버프는 사람을 이다지도 온갖 것을 하게 만든다.) 하루이틀 밟다보니 혈액 순환이 되면서 몸은 개운했다. 그런데 30분 넘게 밟아도 머리가 안 깼다. 그래서 다리는 스텝퍼를 밟고 손은 다른 걸 하자니 몸이 다 흔들려서 도저히 상체로는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찾은 방법이 책 보기였다. ‘어차피 벽돌책 깨기로 다짐했으니, 맹한 정신으로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일단 펴놓으면 되지 않겠나’ 싶은, 약간의 반칙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쉬운 책을 폈다. 묘하게 이게 또 효과가 좋았다. 아침을 유튜브나 뉴스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총명해지는 기분이었달까?


심지어 일타삼피까지도 된다. 하루는 나름 중요한 일정이 있었다. 그 날 왠지 말을 똑부러지게 하고 싶었다. 발로는 스텝퍼를 열심히 밟고, 손으로는 책을 아주 간간히 넘기고, 입으로는 책을 소리내어 읽었다. (새해 버프가 진짜 여기까지 간다. 무섭지 않은가?) 눈으로 읽을 때보다 확연히 속도는 늦어졌다. 하지만 소리내어 읽으니 정신이 더 빨리 들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어깨가 더 쫙 펴지는 기분이었다. 발성과 전달력을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책이 쉬워도 꿍얼꿍얼 작게 읽을 만한 책이 없었던 탓일까. (덕분일까?) 벽돌책 특성상 쉽거나 익숙한 말이 별로 없다. 그래서 또박또박 읽게 됐다. 참, 아나운서도 아닌데 아침부터 또박또박 읽기 연습을 한 셈이다. 갓생 살기의 뿌듯함이 있다면, 이런 걸까?


마지막 꿀팁은 ‘스스로 경쟁하기’다. (이게 새해 버프의 꽃이다.) 첫 시작은 ‘눈으로 읽는 시간 기준으로 한 쪽에 1분’이었다. 한 챕터의 맨 마지막 페이지와 처음 페이지를 빼면 그 챕터의 전체 쪽수가 나온다. 그 쪽수를 분minute로 환산한다. 시리에게 말한다. (왜냐고? 책 읽는데 핸드폰을 보면 그 순간 쇼츠에 매혹 당해버린다. 아예 핸드폰을 안 보는 게 상책이다.) “50분 타이머 맞춰줘.” 알림이 세팅되면 책에만 오롯이 집중한다.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괜히 긴장된다. 과연 나는 이 퀘스트를 깰 수 있을까?


해내고야 만다. 한 노래 가사는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한 챕터를 마치고 나면 다음 챕터에서는 쪽수당 읽는 시간을 조금 줄여본다. 1분이 아니라 55초로. 그것도 성공하면 50초로. 그렇게 조금씩 줄이는 퀘스트를 부여하고 해낸다. 작은 성공 경험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하던가? 진짜 맞는 말이다. 근데, 이러면 잠을 못 잔다. 50분이 45분이 되고, 40분이 되는 게 이어지면 잠은 못 자고, 해는 뜬다. 그러니 시리에게 미리 요청해둬야 한다. “밤 11시 59분에 알림 맞춰줘.”



3.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모든 생물은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한계에 목도한다.
인간이 유달리 특별한 건, 그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내기까지 한다.


세 권의 중국 책, 지리와 도시 책들, 리더십과 흥망성쇠 책들, 교육과 기술 책들을 읽으며 ‘어우 다들 진짜 열심히 살아간다.’라고 생각했다. 두 달간 이 생각으로 별의 별 짓을 다 하며 두꺼운 책들을 독파하고 난 지금, 나 역시도 마찬가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엥,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다 천재고 만재고 똑똑이들인 건 아냐!’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동의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트이는 순간’이 있다는 것도 그 두 달간 알게 된 점이라는 걸 짚고 싶다. 내게는 그것이 책장과 책상을 가득 채운 벽돌책들의 방치를 목격한 순간이었다. 어떤 나라에게는 여러 리더들의 등장과 숙청 순간들이었을까. 어떤 도시에게는 역병이 돌았던 순간이었을까. 어떤 영장류에게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추위 때문이었을까. 그 ‘트이는 순간’이 오면, 사람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는다. 그리고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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