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펙 없이 토종으로 미국 MBA를 준비하며 느낀 점
외국계 기업 마케팅팀에서 5년 차. 대리로 승진도 했고, 좋은 팀원들과 함께 성과를 내며 커리어가 술술 풀리는 시기였다. 겉으로 보기엔 찬란한 20대 후반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계속 비어 있었다.
이유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해외 MBA라는 꿈을 실현해봐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생 때부터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컸지만, 주변에 다녀온 사람이 없어 정보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또렷해졌다. 도전을 해보지 않으면 죽기 전에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Failure definition ended up becoming "not trying" verses the outcome.
처음엔 회사와 GMAT 시험 준비를 병행을 했다. 야근하고 공부하고, 숙제하다가 잠들고, 주말은 강남 학원가에서 보내는 생활.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내 좋지 않은 머리와(?) 현재 상황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렇게는 둘 다 놓치겠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딱 1년만 퇴사해서 수험생 모드로 제대로 해보자. 인생 길고 긴데 1년이 뭐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잖아. 안 되면 다시 취직하면 된다!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건 도피가 아니라는 확신은 100%였다. 대학생 때부터 천천히 그려온 계획 중 하나였고, 결과와 상관없이 한 번은 치열하게 준비해보고 싶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포기해야 할 것들 (결혼/가족, 커리어, 연봉) 이 더 커질 것 같아서, 마음이 움직였을 때가 가장 빠른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퇴사 선언 후, 도서관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물론, 회사원에서 수험생 ‘백수’로 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더 가혹했다. 나를 소개할 수 있던 직업과 회사 이름이 사라지고, 더 이상 월급은 들어오지 않았다.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도 멀어졌다. 예전엔 부담 없이 사 먹던 커피 한 잔, 떡볶이, 편의점 간식 같은 것들도 계산대 앞에서 한 번 더 고민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이 시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가족과 필요한 시간도 보내고, 요리 실력도 늘고, 홀로 어떻게 지내면 행복한지 터득했다. 돌아보니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근육들을 키웠던 시간이었다.
관련 입시설명회를 다니며 정보를 섭렵했다. 이런 이벤트를 참가할 땐 주눅이 들기도 했다. 대기업 출신, 화려한 스펙, SKY 학벌. 다들 너무 멋져 보여서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나’ 싶었다. 나이도 내가 더 어린것 같기도 싶고. 그런데 막상 지원을 준비하고, 미국에 와서 보니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내 나이와 비슷한 MBA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고 워낙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나도 그중에 하나일 뿐,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과적으로 싱가포르 탑 1 & 2 학교, 그리고 미국의 한 학교에서 장학금과 함께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코로나가 시작됐다. 그래도 나는 갈 길을 가야 한다. 코로나도 나를 막을 수 없숴. 주변에서는 이제 정착을 이야기할 때였지만, 나는 거꾸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곳이 미국 중부의 낯선 도시, 세인트루이스가 될 줄은 그때의 나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