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측> 中 린다 그래튼 인터뷰를 읽고
<초예측>(웅진지식하우스, 2019)을 읽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세계 석학 8명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여러 석학들의 시각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인터뷰어는 일본인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이다. 개인적으로 저자를 오노 가즈모토로 표시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여러 학자들의 생각을 싣긴 했지만, 무슨 질문을 했는지 누가 내용을 구성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인터뷰인 점이 아쉬웠지만, ‘미래사회’에 관한 내용은 우리도 참조해 볼 만하다. 그중 4장 ‘100세 시대’를 주제로 한 내용이 가깝고도 낯설게 보여 유심히 읽게 되었다.
‘100세 시대가 온다.’ 십 년쯤 전에 첫 아이의 보험을 가입하면서 기대 수명을 100세로 계산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나 자신도 얼마나 사는지에 대해 염두에 두지 않던 서른 살이었다. 그 당시는 그저 막연하고 까마득하게 느껴져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2020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남자 80.3세, 여자 86.3세라고 한다. 세계 평균 기대수명은 1950년대 50세 미만의 수준에서 계속 증가하여 현재 남자 70.8세, 여자 75.6세에 이르렀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80세 이상이며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 정도이다. 평균수명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데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간의 변화에 우리 사회가 발맞춰 가고 있을까?
린다 그래튼은 더이상 인생을 교육-일-은퇴 3단계로 생각하긴 어렵다고 한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인생은 세분화되어 여러 단계의 삶이 펼쳐진다고 한다. 요즘도 일하면서 계속 자기 계발을 하며, 은퇴란 말이 무색하게 노년 일자리를 찾는 현실이 펼쳐진다. 더이상 특정한 단계로 나누어 삶을 설계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이 길어질수록 오래 일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사회 변화를 겪는 것도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저자는 건강, 동료애, 변화에 대한 대응력과 같은 무형자산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한 변화의 방향과 정도, 시기를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여가 시간을 재창조에 투자해야 한다고, 삶의 모든 단계에 학습하는 시간을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배우려는 내용에 따라 5분 자투리 시간, 주말, 2~3개월의 장기휴가 단위로 구분하여 계획을 세우라고 조언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속적인 배움의 필요성은 공감할 것이다. 그렇지만 ‘삶의 모든 단계에서의 학습’이라니, 시작도 하기 전에 버겁게 느껴진다. 학습을 또 하나의 일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서다. 배우기보다 즐길 수 있는 활동인 취미를 개발하며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취미 또한 하나의 경제활동이 될 수도 있다. 린다 그래튼의 말처럼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보며 학습이 아닌 관심 가는 취미 활동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인터뷰 내용에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맞벌이가 제시된다. 여기서 ‘맞벌이’는 부부가 모두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한쪽이 버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쪽은 다음 단계를 향해 재창조에 전념하는 것을 뜻한다. 개인이 일과 학습(재창조)을 병행하는 것을 가정단위로 확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 제약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몇 년 단위로 계획을 짜서 부부가 번갈아 일과 재창조의 시기를 가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가정을 예로 든다면 남편은 생계를 위해 회사를 다니고, 나는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재창조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없는 형편이다. 내가 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십대가 되니 돌봄의 시간이 줄어들며 몇 시간씩 여유가 생기긴 했다. 그러나 6년이란 경력단절을 겪고 난 후라 막막함이 앞선다. 주변에 또래를 키우는 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비슷한 고민을 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거의 모든 여성이 일을 한다. 특히 덴마크는 일찍부터 자녀를 사회에서 돌보는 제도가 정비되어 있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라 여겼던 나의 삶의 단계가 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국가 정책은 어떤지에 따라 정해지는 건가란 생각이 든다.
린다 그래튼은 100세 시대의 국가의 역할도 언급한다. 정년제를 폐지하고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 제도는 풀타임 교육/근무/퇴직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시간을 재분배하듯이 정부도 자원을 재분배하여 평생 학습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60대 이상과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과거에 비해 현대의 고령자들은 훨씬 건강하고 활기차다. 오늘날의 60대는 과거 40세와 건강 상태가 비슷하며 많은 경험도 갖추었다. 정책과 제도도 이에 발맞춰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국가와 기업에서 필요성을 깨닫고 100세 시대에 적합한 규범과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더불어 개인에게는 정부와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서 노동시장에서 교섭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 인정받는 재원이 되어야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것 외에 인맥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인맥은 단순히 아는 사람을 늘리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다양한 네트워크로 다른 부류의 친구를 사귀면 자연스럽게 삶의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100세 시대에 맞춰가는 과정은 쉽지 않을 수도,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제 우리는 여러 단계의 삶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며 주도해야 한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고민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선택을 하자. 원하는 삶을 위해 근무 환경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길어진 삶의 여정만큼 적극성과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