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에세이를 읽고
별일 없이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싶을 때가 있다. 맑은 날의 햇살, 슬그머니 부는 바람 그리고 나무에 달린 풍성한 나뭇잎이 보인다. 그리고 말들... 너무 흔하고 익숙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다. 좋다 아니면 싫다. 기쁘다 또는 슬프다. 좋아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솔방울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낱말들도 있다. 기억, 꿈 그리고 상처, 공감 등등. 자주 보이는 만큼 무심히 내뱉고 마는 단어들이다.
보통의 순간에 나오는 말들이 감정을 드러내지만 혹시 언어의 틀에 맞추어 감정이 변형되는 건 아닐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감정에 어울리는 표현을 적절히 고르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느끼고 말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서도 언어를 사용한다. 보통의 말들은 숱한 감정들을 울타리치며 모으고 다듬는다. 가끔은 이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 마음과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면. 그러면 서로의 진심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관계의 언어, 감정의 언어 그리고 자존감의 언어로 묶어지는 일상의 언어를 살펴보는 시간.
첫째로 관계의 언어는 사람들이 만나고 모였다가 헤어지는 순간들과 함께 하는 말들이다. 좋아한다, 미움받다, 사과하다... 단어들을 곱씹으며 저자의 단상을 따라가니 내가 마주쳤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같은 듯 다른 듯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를 구분해야 했던 때, 실망과 미움을 만나 당황했을 때, 사과와 공감의 깊고 넓음을 가늠해보던 시간들이 있었다.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그 모든 순간이 소중(重)하다고 할 수 있다. '소중하다'의 무게감은 무언가를 두 손으로 받쳐 살피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모습처럼 만남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두 번째 감정의 언어는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마음의 빛깔을 불러주는 말들이다. '부끄러움'은 얼굴이 달아오르게 하지만, 지켜야 할 것들과 붙어있어 소중하다. '찬란하다'는 색색깔의 유리조각들이 서로 부딪혀서 내는 청명한 소리와 같다. '슬프다'라고 소리 낼 때 느껴지는 입술의 질감이 새롭다. '서럽다'와 '서글프다'는 한밤의 골목길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감정의 말들은 혼자 있지 않다. 기억과 함께 붙어서 마음속 액자에 실린 사진과도 같다.
세 번째로 자존감의 언어가 있다. 자아의 밑바탕을 그려가며 여무는 성장의 순간에서 마주치는 말들이다. 어릴 적 '성숙한 아이'라고 칭해지며 미성숙한 어른이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한다. '꿈'이란 말은 아름답고 모호하며 손에 잘 잡히지 않아서 구름, 무지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간혹 '유난하다'라는 말 앞에서 슬그머니 감춰온 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이상하다'는 말로 구분 짓지 않고 '특별하다'라고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하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싶다. 때로는 애쓰지 않고 그저 '살아남아' 내 한계를 느껴보는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기특하다' 여기기 위해서 거창한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배려의 말 건네기, 분리수거 지키기 등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가꾸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밑줄 그은 문장 :
(p.49) 감정의 서랍은 냉장고와 달라서 열고 닫을수록 풍성해진다. 비록 나의 경험치가 아닌 일임에도, 진심으로 내 마음속의 서랍을 열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p.67) '미안하다'라는 말은 말꼬리가 길수록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은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심어두는 거라는 깨달음을 준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이며.
(p.73) '지질하다' : 구차해짐을 불사하고 생략되어도 무방한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따스함이 있는 사람이다.... 호방한 사람들이 놓친 작은 세계를 들여다봤을 때 그곳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어쩌면 바로 이런 지질한 사람들 덕이 아닐까.
(p.155) 생각건대,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 줄 무언가 일 것이다.
(p.201)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가 대견한 순간은 굉장히 작은 것들이다. 철저히 분리수거를 하는 것, 어리숙한 아르바이트생의 실수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소소한 말을 건네는 것,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는 것 등등.... 내가 생각하기에 존엄한 사람들은 일상 속 하찮은 순간들이 정갈한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