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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May 22. 2021

궁남지에서 물결치는 마음

21년 5월 부여 가족여행에서의 작은 단상

 5월 초 연휴기간을 맞이해서 부여로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 학교 재량휴업일과 어린이날이 이어지는 연휴를 알차게 보내려고 한 달전쯤부터 계획을 짜 온 것이었다. 부여 내 여러 장소를 검색하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보며 일정을 만들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중 궁남지는 야경을 꼭 봐야 한다는 얘기가 기억나서 해 질 녘에 가야지 생각하며 메모해 둔 장소였다.



 여행 둘째 날에 부여 시내 곳곳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다가 저녁 여섯 시가 가까워졌다. 우리 가족은 드디어 부여여행 추천 장소 1위의 궁남지가 있는 서동공원을 향하게 되었다. 여행을 응원하는 푸르른 하늘과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두 아이들은 차 뒷좌석에서 신나게 얘기하며 떠들어댔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좀 흥분한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나 또한 보조석에 앉아서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재미에 들떠있었다.


 드디어 서동공원 주차장을 들어서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스갯소리 경연대회를 하는 것처럼 열을 올리다가 어느 순간 사소한 말로 시비가 붙었다. 말다툼이야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인데 그날따라 두 아이 모두 얼굴을 붉히며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만하라는 나와 남편의 주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급기야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을 때는 서로를 쏘아보더니 각자 반대 방향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니 서동공원은 궁남지를 가운데 품고 있는 모양새라서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연못을 향할 수 있긴 했다. 그렇지만 같이 가자는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휙 가버리는 아이들 모습에 괘씸한 마음이 솟았다. 아직 날이 환하고 사방이 트인 곳이라 뒤에서 두 아이가 어디로 가는지를 잠시 지켜보았다. 첫째는 돌아보지도 않고 씩씩거리며 나아갔고, 둘째 아이는 앞으로 좀 가다가 뒤돌아 보더니 자기한테 오라며 소리쳐 불렀다. 정말이지 아이들이 싸울 때는 난이도 높은 서술형 문제를 마주한 기분이다. 남편과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두 아이 사이의 중간에 나있는 길을 택했다.

 궁남지까지는 이 십 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첫째는 불퉁스러운 얼굴을 하고 떨어져 걸었고, 둘째는 혼자 이리저리 내달리며 주변을 구경하고 다녔다. 두 아이에게 같이 다니자며 어르고 달래 봤지만 별 반응이 없어 결국 내 심사도 단단히 뒤틀리고 말았다. 결국 맥이 빠진 나는 곳곳에 설치된 벤치와 그네의자 중 한 곳에 앉아서 말없이 연못을 바라봤다. 주변에 아이들을 동반한 다른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여섯 살 남짓되는 여자아이가 엄마 아빠의 사진을 찍어 주는 모습, 같은 옷을 맞춰 입은 자매의 사진을 찍어주는 아빠의 모습, 씽씽이를 타고 앞으로 가는 모자 쓴 남자아이와 이를 따라가는 부부의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기도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한 시간 가량 지났을까.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연못 주변부터 중간에 있는 포룡정과 목교까지 금빛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명 빛이 물 위에 부서지면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다. 과연 야경이 일품이구나. 그러나 주변 풍광이 무색하게도 내 속은 여전히 시끄럽게 요동치며 영 다른 세상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 풍경을 찍어가며 화를 삭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저녁시간을 즐기지 못한 아쉬움까지 더해지며 기분이 가라앉기만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단단히 꾸중을 들은 아이들은 다툼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고 풀 죽은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어찌 보면 싸우고 시비가 붙는 건 아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나는 왜 그리 화가 났던 걸까. 그리고 왜 좀처럼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을까. 단순히 아이들이 싸웠다는 것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어쩌면 그건 여행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좀 더 정확히는 여행에 대한 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가며 왔기 때문에 즐겁고 신나야만 할 것 같은 일종의 강박이 생겼던 것은 아닌지. 일상과는 다르게 완벽하길 기대하며 조바심을 낸 것은 아니었는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호흡이 절로 나왔다. 괜찮아 괜찮아 생각하며 잠시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다. 그리곤 얼마 후 누그러진 마음으로 다짐을 하나 했다.

여행도 일상처럼 그저 그렇게 여러 가지 빛깔로 채워 가보자고. 바랐던 것과 그렇지 않았던 것을 적절히 섞어가며 다채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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