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May 25. 2021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내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 였을까

 중학교 3학년 때 나의 학급 석차는 줄곧 4등이었다. 그것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에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으면서 나름의 공부를 해내고 있다고 자족할 수 있는 등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한 학급에 50명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있어서 나처럼 말수가 적고 평범한 여러 아이들은 출석을 부를 때나 확인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분명 있지만 뭔가 흐릿한 존재로, 자아가 있지만 그게 아직 무언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중학교 시절의 막바지가 되면서 생애 첫 입시 고민이 생겼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라 고등학교를 골라 지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는 단계를 통해 진학할 수 있었다. 성적순으로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2~3개 학교 정도였다. 엄마는 내가 인문계고등학교가 아닌 집에서 가까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라셨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할 수 있고 대학 등록금 걱정도 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경제적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엄마는 생계 걱정이 크셨던 모양이다. 혹 집안 사정이 어려울 만한 사건이 있었는데, 눈치가 없어 몰랐을 수도 있다. 문제는 나에겐 집안 사정을 걱정할 만큼의 성숙함이 없었다는 거였다. 뜬금없이 전에 없던 반발심이 고개를 들었다. 상고에는 가고 싶지 않은데… 끝을 흐리는 말도 해보았다. 엄마는 고민하시는 것 같기도 했고 본인의 의견대로 했으면 하시기도 했다. 고집도 좀 부려볼까 했지만 나도 인문계고등학교에 가려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길처럼 보이는터라 막연한 망설임과 거부감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진학 상담을 위해 학교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담임선생님은 파마머리가 멋진 중년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강단 있고 밝은 인상으로 국어과목을 담당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와 선생님 사이에 오갔던 얘기가 궁금했지만 알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다만 나중에 엄마가 해준 몇 마디로 추측을 하며 퍼즐을 맞춰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이 결국 엄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셨다는 것이다. 상담은 내가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선생님은 뜻밖에 나에 대해서 꽤나 많이 알고 계셨다. 그러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에 무게가 실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학생 수가 많다고 아이들 개개인은 잘 모르실 거라는 건 어리고 부족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시험성적뿐 아니라 성격, 성향 등을 다 파악하고 계셨고, 애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학생들과도 진학 상담을 진행하셨다. 세월은 지났지만 선생님의 얼굴을 생각하면 어떤 선명한 표정 같은 것이 떠오른다.

 상담 후 선생님은 내가 관심 있어한 인문계 고등학교 한 곳을 직접 볼 수 있게 견학 기회를 마련해 주시기도 했다. 얼마 후 엄마와 함께 고등학교를 둘러보게 되었을 때 느꼈던 낯설음이 지금도 느껴진다. 건물 외형 모습과 복도 바닥 느낌, 창문 너머로 들여다본 교실 풍경이 묘하게 성숙함의 냄새를 풍겼다. 이후에 나는 별 탈 없이 그 고등학교에 지원서를 내서 시험을 보고 입학을 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버스로 30분쯤 떨어진 곳이었지만 불평하지 않았고 힘든지도 몰랐다. 내가 선택한 곳이라 그랬던 거 같다.


 나의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 ‘지원할 학교를 두고 갈등을 벌이는 부모님과 선생님’ 같은 드라마틱한 내용은 없었지만, 나는 인생 최초의 갈림길 앞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망설였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을 해서 한 걸음 내딛은 만큼 나의 세상도 한 뼘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쯤 내 안에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깨어났다. 내 선택에 대해 확신하는 힘, 그건 어른을 향해가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궁남지에서 물결치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