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페인트>, 이희영, 204쪽(창비, 2019)
첫 문장. 두 사람은 홀로그램 속 모습과 약간 달라 보였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선택'하여 함께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쉽게 말하면 결혼 상대를 고르듯이 말이다. 배우자를 찾을 때 어떤 부류는 직업, 가족관계, 취미, 건강 등 을 꼼꼼하게 따져볼 것이고 또 다른 부류는 좋은 사람을 찾을 것이고, 간혹 운명적 인연을 기다리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가 의지를 가지고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도 적용된다면 어떨까? 현재의 부모는 적어도 아이의 출생과 양육환경을 원하는 대로 택할 수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자녀의 입장으로 생각해보자.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도 어느 정도의 판단력과 의사 표현이 무르익은 열세 살이 된 후에 부모를 고른다면?
어떤 기준으로 부모를 골라야 할까? 그리고 그 기준에 나는 과연 선택될 수 있을까?
소설의 배경은 아이를 잘 낳지 않고 키우지 않으려는 사회로 그려진다. NC센터(nation's children) 는 여러 사정으로 친부모가 키우기 어려운 아이들이 성장하는 곳이다. 여느 집 아이가 아닌, 말 그대로 국가의 아이들로 키워지는 곳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되어 센터 내에서 생활하고 학습한다. 양육환경은 부족함이 없고 '가디'라는 헌신적인 직원들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계속 센터에 머무르기는 어렵다. 어른이 되기 전에 부모를 만나 입양이 되어 사회에 나가야 하고 그러길 바란다. 외부 사회의 대중은 베일에 가려진 그들을 부정적으로 여기며 자신들과 구분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NC센터 아이들이 부모를 만나는 과정은 특별하고 엄격하다. 서류, 건강, 심리 검사를 꼼꼼하게 거친 지원자들을 '부모면접'이란 과정을 통해 선택하게 된다. parent's interview. 센터 아이들 사이에서는 비슷한 영어 발음의 '페인트'라는 은어로 불린다. 아이들은 지원자가 호감이 가는 사람인지, 믿을 수 있는지, 보호와 지원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이리저리 재본다. 순수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는 아이도 간혹 있다. 하지만 이미 십 대 중반을 넘어서는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관심보다 무관심이, 친밀함보다 적당한 거리가 더 편안할 것이다. 이 점에서 스스로 할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지만, 여전히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한 모순적인 상황이 드러난다. 자신을 '가젤'과 같다고 자조하는 노아, 아직은 부모의 사랑이 고픈 아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생각이 깊고 영민한 주인공 제누의 대사를 통해 십 대들의 고민과 그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부모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두께가 가볍고 줄거리도 어렵지는 않지만, 십 대 시절이 시작된 아이 둘을 키우는 처지라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며칠간 소설 속 문구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청소년추천소설인 만큼 중고생들도 많이 읽을 것이다. 그들은 어느 부분에 눈길을 주고 곱씹게 될까? 요즘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별 부족함이 없고 풍요롭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되며 학교에 다니고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nc센터 등장인물들에게 더욱 공감하며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부모면접을 하고 점수를 매기는 상황을 읽으며 희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을 거치다 보면 다른 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부모를 만나려면 결국 좋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점수는 서로가 매기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을. 극중 노아의 말처럼 원인 없는 결과는 없을 거고,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 또한 지속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가는 것에 대해, 가족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출신이라는 근원을 넘어서서 자신을 스스로 온전히 이해하고 홀로서는 주인공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좋은 가족, 좋은 부모, 좋은 자녀... 결국, 이 모두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는지.
p.52 그래, 노아의 말처럼 이 세상에 원인없는 결과는 없을 것이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고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그 상대를 그렇게 만든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p.56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가며 농수산물을 사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 아닐까?
p.117 "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 "부모와 아이의 관계, 그건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p.142 원칙과 규율을 칼같이 지키는 것보다 힘든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다.
p.188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p.208 가족이란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먼발치'라는 말의 뜻은 시야에는 들어오지만 서로 대화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떨어진 거리, 라고 한다.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마음속 거리가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지만 대화는 할 수 없는 거리 말이다.
p.252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또 모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잖아요." 모른다는 것이 꼭 나쁜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으니까.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