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Mar 10. 2022

[인류세 : 인간의 시대] 리뷰

EBS다큐프라임 <인류세>제작팀 지음, 323쪽 (해나무, 2020)


인류세,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세금을 내라는 말인줄 알았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말이란 걸 알고 상상해봤다. 사람들이 자연을 소비하고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으니 그에 따른 대가를 내야 한다는 걸까?


뜻을 알고 나서 폭 좁은 내 생각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인류세는 훨씬 장대한 의미를 지닌다. 세금이라는 세속적인 굴레를 벗어나 무려 지구의 크기로 시야를 넓혀야 했다. ‘인류세’는 지질시대의 하나의 명칭으로 등장했다. 지질시대는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지질학에서 주로 사용한다.


지질학은 지구의 구성 물질과 지구에 살았던 생물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구를 지구의 관점으로 본다.

생소한 용어를 늘어놓자면, 지질시대는 누대Eon-대Era-기Period-세Epoch-절Age 로 분류된다. 생물의 출현과 멸종에 따라 수백, 수천만 년의 단위로 나뉜다. ‘고생대’, ‘백악기’, ‘쥐라기’ 등과 같은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현재는 ‘신생대 제 4기 홀로세’ 이다. 약 1만 1700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최근 70년간 지구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홀로세라는 용어가 더는 현시대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21세기가 시작되며 연구자들은 ‘인류세’라는 담론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46억 년의 지구 역사에, 대륙이 이동하고 땅과 바다가 바뀌는 흐름에, 인류의 이름을 붙인다니 이건 무얼 의미할까? 그만큼 인류가 위대하고 막강한 걸까? 최근 급변한 환경을 살펴보면 인간의 영향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현재 육상 동물 중 야생동물은 겨우 3프로의 생물량biomass 을 차지한다. 땅위는 인간과 인간이 가축화한 동물 (개, 고양이, 닭, 돼지, 소) 들로 넘쳐나고 있다. (p.80)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 동남아 보르네오섬은 정글이 사라지고 팜유농장으로 뒤덮이고 있다. (p.103)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생산된 플라스틱의 총량은 83억톤이다. (p.147)

알려졌다시피 플라스틱은 불사의 존재에 가깝다. 자연에서는 분해되지 않는다. 양이 늘어나며 가치가 떨어져 재활용률도 낮다고 한다. 83억 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마어마한 양이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 중 상당한 양이 바다와 해양 생물에게 흘러들었다. 부서지고 작아지기도 했다. 미세플라스틱에서 작은 것은 머리카락 지름보다 작아진다고 한다. 북태평양에 떠다니는 거대한 쓰레기 지대도 있다. (GPGP, Great Pacific Garbage Patch) 우리나라의 15배 크기로 추정되는 구역인데 스모그처럼 플라스틱으로 뒤덮여 있다. 바다는 물이고 물은 흐르고 있기에 플라스틱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잘게 부서진 조각들은 결국에 해안가로 돌아온다. 사람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반대로 작아지지 않고 묵직해진 플라스틱도 있다. 열, 압력으로 산호나 돌과 결합되어 ‘플라스틱글로머레이트’라는 신종 암석이 되기도 한다. 화산섬 하와이에서 흔하게 발견되며 인류세를 상징하고 있다. (p.168)


다른 생물 종에 끼치는 플라스틱의 영향력도 치명적이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인류는 현재 다른 생물 종들을 멸종시키고 있다. 바다거북, 낙타는 위에 비닐봉지가 채워진 채 죽어간다. 미드웨이에 사는 거대한 새 앨버트로스 몸에서 수십 개의 라이터가 발견된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인간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한편으로 누구도 보고 싶지 않아 한다.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문제 해결이 어려우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종종 환경 뉴스를 보며 잠시 경각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 순간뿐이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한 발명가가 만든 당구공 대체품이 시작이었음을 떠올려보자. 한 개인이 망가진 자연을 돌려놓을 순 없겠지만, 변화를 위한 행동의 시작점을 될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는 지구를 일억분의 일로 축소한 섬이 소개된다. 인도네시아 붕인섬이다. 200년 전 천혜의 섬에 소수의 사람이 정착했다. 지금은 3,400명 정도가 다닥다닥 붙어살고 있다. 그동안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주변 바다는 파괴되었다. 사람들이 흘려보내는 생활하수와 쓰레기의 영향이다. 황금어장은 사라지고, 산호는 40% 이상 훼손되었으며, 주변은 플라스틱으로 넘쳐난다. 붕인섬은 더는 희망이 없는 걸까? 위기를 느낀 일부 젊은이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의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고 한다.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물고기를 양식하고 산호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인류세는 강력한 경고의 말이다: 지금의 지질시대는 인간이 만들어 가고 있다. 인류가 멸종과 붕괴를 몰고 오기 전에 바뀌어야 한다. 과학자들뿐 아니라 모두가 지구인의 마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말한다.


책의 뒷부분에 ‘지구의 절반Half Earth’ 라는 개념이 나온다. 생물학자들은 태평양, 인도네시아 등의 섬을 연구하며 ‘섬의 절반을 보존하면 80% 이상의 식생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행성으로 확대해서, 지구의 절반을 보호하면 생명체의 85%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지구의 절반’ 운동이다. 과연 지구의 절반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수 있을까?


그간 나는 평범하고 무심한 도시인으로 살았다. 나 하나가 무슨 보탬이 될까에 대해 의심하기도 했다. 인류세의 현실을 보고나니 더는 모른척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당장 환경보호를 위한 갖은 노력해낼 자신도 없다.

지구의 절반을 일상의 절반으로 축소해본다면 어떨까? 절반의 렌즈로 주변에 비추어 보자.

비닐봉지 사용을 절반으로 줄이기, 쓰레기와 재활용품 배출량을 반으로 줄이기, 세수하고 양치하며 흘려보내는 물의 양 반으로 줄이기, 소고기 섭취량을 반으로 줄이기……. 일상에서 남기는 나의 생태 발자국 ecological footprint를 반쯤 줄인다면? 한 명 한 명의 면적을 줄이고 그것들이 모인다면 지구의 절반을 다음 세대에 남겨줄 수 있지 않을까?


꼭 100% 애쓰지 않아도. 절반의 행동으로도 바뀔 수 있다고.

50%가 80%를 구할 수 있다고. 절반의 노력이라도 생명을 살리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과 불행, 삶과 죽음 사이에 도서관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