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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May 02. 2022

요즘의 욕망에 발 담그며

<달까지 가자> 장류진 글, 364쪽 (창비, 2021)


다들 한다는 주식을 마흔 넘어서 처음 거래해보았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남편이 진작에 내 명의의 증권계좌를 열어둔 까닭이다.


며칠 전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여윳돈이 천만원 있는데, 방법은 잘 모르지만 삼성전자 주식을 사고 싶다고 하셨다. 친구분들이 주가가 내려갔다고 푸념하는 말을 듣고, 당신에겐 이 시점이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단다. 나는 우물쭈물 선뜻 대답을 못했다. 주식뿐 아니라 재테크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부끄럽게도 사실 거의 모른다. 엄마는 당장 필요한 돈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 하셨다. 그래 모, 얼마를 살지, 무엇을 살지도 정해서 부탁하시는데 구매 버튼 하나 못 누를까. 구매가 아니라 매수라고 해야 하나?


핸드폰을 켜고 노란색 네모의 앱을 클릭하니 빨강, 파랑의 숫자와 화살표들로 혼란스러운 화면이 나왔다. 종목별 그래프는 오르락내리락 거친 산세처럼 보였다. 정말 괜찮은 걸까. 더욱이 최근 추이는 내리막이었다. 곧 상념을 떨치고 몇 주를 살까 계산했다. 엄마의 심부름이라 여기며 가볍게 마음먹었다. 받은 돈을 나누어 며칠에 걸쳐 여러 차례 매수하니 익숙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쩌면 나는 초보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며칠 전까지 ‘사자’와 ‘존버’를 외치고 그래프의 등락에 휘청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비록 소설에 몰입한 간접경험이라 해도.


젊은 작가 장류진의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는 별 볼 일 없는 직장인들이 가상화폐에 투자하며 울고 웃는 내용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욕망과 애환을 여실히 보여준다. 내게도 직장생활을 한 시기가 있었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 마음마저 궁핍했던 시절도 떠올라서 젊지도 않으면서 공감하며 읽었다.


돈벼락 한번 맞아보고 싶다고, 풍요가 넘치면 여유와 행복은 저절로 솟아날 거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일확천금 같은 말은 믿지 않는다. 그래도 이 소설은 여전히 흥미롭다. 코인 그래프 위에서 줄타기하는 듯한 재미로 밤잠을 설칠 수도 있다. 덤으로 투자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엄마가 내게 맡긴 천만원과 '달까지 가자'고 말하는 책 한 권이 나에게 여기도 들여다보라고 손짓한다. 돈과 투자, 그 미지의 세계로 유쾌하게 한 발짝 들어가 본다.




p.94 화면 속에 거대하고 가파른 곡선 하나가 나타났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며 약간 아래로 기우는 듯 하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때에 별안간 치솟으며, 깍아지를 듯, 뭐라도 뚫을 기세로, 급하게 우상향하고 있는, J커브였다.
p.102 언니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그 터널 형태의 포털이 어디서 어떻게 열렸는지를 잘 떠올려보라고 했다.
"아주 어이없는 곳에, 난데없이 열리잖아. 상상도 안 해본 곳에서."..... "난 이게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
p.121 우리는 달까지 가기로, 그때까지 버티기로 약속했다.
p.187 만족감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쪽의 마음도 동시에 늘어났다. 그러니까 땅 밖의 줄기가 길어질수록 땅속의 뿌리도 그만큼 깊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p.193 "....그럴 자격 있다. 누구든 좋은 걸, 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p.309 "나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너한테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난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p.314 .....참 많은 것을 모르고, 또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어떤 것들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며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같은 것들을.
p.332 "돈도, 자기 좋다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


#디버프해지스킬 #J커브 #가상화폐_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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