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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즈 Apr 18. 2022

머무는 삶에서 여행하는 삶으로

영화 <두 교황> 리뷰

<두 교황>(2019,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은  현재 재임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호르헤 베르골리오)와 그 전임자인 베네딕토 교황(요제프 라칭거)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 인물은 각각 보수와 개혁을 상징한다. 독일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로 자란 베네딕토 교황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개혁성향의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분명하게 대비되며 빛을 발한다.


교황은 선출직이면서 종신직이다. 따라서 교황이 둘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2013년도에 베네딕토 교황이 자진 사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며 두 명의 교황이 한 시대에 존재하게 되었다. 이를 둘러싼 가톨릭 교회의 모습이 뉴스화면과 자연스레 교차되며 생생하게 전달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교황과 추기경이 여름 별장에서 만난 부분이었다.


2012년 여름, 베네딕토 교황은 여름별장인 ‘카스텔 간돌포’에 머무르고 있다. 같은 시각 로마에서는 교회 비밀문서 유출과 바티칸 은행의 위법 행위, 성직자들의 성추문으로 연일 뉴스가 떠들썩하다. 불과 7년 전에 교황을 뽑는 투표인 ‘콘클라베’가 있었다. 그때 그는 다른 추기경들에게 교회는 큰 위험에 처해있다 말하며, 원칙을 중요시하는 자신에게 투표할 것을 권했다. 그의 말이 예언이 된 걸까?

그는 하나의 원칙과 수백 년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성직자들이 신분에 맞는 복장을 갖추길 요구한다. 규율과 관습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선을 긋는다. 이혼, 피임, 동성애 등에 반대한다. 혼자 식사하며 어머니의 레시피를 고집한다. 정원 벤치에 앉아있던 교황의 손목 밴드에서 알람이 울린다. “멈추지 마세요, 계속 움직이세요.(Don’t stop now. Keep moving).” 그는 정원 벤치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킨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1만보를 걸어야 한다.

교황을 찾아온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말한다.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고,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는데 교회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고. 우리가 속한 교회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교황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속세와 타협할 순 없다고 답한다. 추기경은 타협이 아니라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교황은 변화는 곧 타협이라며 잘라 말한다. 이어지는 논쟁의 끝에 추기경은 주님도 변하며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교황은 언짢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우리는 주님을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고. 베르골리오는 답한다. “이동하면서요?(On the Journey?)”

이에 교황은 할말을 잃고 방향을 바꾸어 정원 한 귀퉁이 문을 지난다. 그리곤 잠시 멈칫한다. 낯선 곳에 들어선 것이다. 오히려 방문객인 추기경이 저쪽에 그늘이 있을 거라며 교황을 이끈다.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낯선 곳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내일'이라는 낯선 곳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굳게 고수하던 오늘의 삶이 있다 해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의심하지 않았던 삶의 방식들이 도리어 나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면?


On the journey....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말을 신앙뿐 아니라 삶에도 적용해보자. 나는 예전부터 정적이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40대가 되면서는 더욱 안정된 생활과 취향을 고집하곤 했다. 마치 한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사는 것 같다. 그러나 낯선 곳을 앞에 두고 멈칫하고 싶지 않다. 자연스럽게 여행하듯 새로운 곳으로 발을 내딛는 상상을 한다. 나만의 원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나선을 그리며 세상을 탐구해보려 한다. 삶을 여정으로 바꾸는 유연하고 너른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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