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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춘 Jul 06. 2022

소비생활 | 노트북 파우치 그리고 필기구

뭔가 그리고 적는 내가 좋아 :)

얼마 전, 아내가 노트북 파우치를 하나 보여줬습니다. 광고보다 무서운 것이 나의 취향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내는 제가 물건을 많이 들고 다닌다는 걸 알고 원색의 단순한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손엔 위글위글 노트북 파우치가 들어왔습니다. 말 그대로 노트북을 담아 다닐 수 있는 수납 주머니인데 큼직한 보조 주머니 두 개와 작은 주머니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저는 원래 아이패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이패드 파우치를 살 수도 있었지만 제가 가진 물건들을 어떻게 수납할지 고민해보니 노트북 파우치가 더 좋아 보였습니다. 그럼 여기에 무엇들을 담았을까요? 먼저 가장 큰 주머니에는 아이패드 + 키보드 그리고 모눈종이 공책 + 필통을 담았습니다. 바깥쪽 큰 주머니 두 개 중 하나엔 아이패드 충전기 + 보조배터리를 담았고 나머지 하나엔 얼마 전 새로 산 킨들을 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주머니엔 블루투스 무선 마우스를 넣었습니다. 이렇게 넣고 보니 무게가 상당하네요.


사실 맘에 드는 디자인의 물건을 산 것이지만 이번 구매 행위에 살짝 묻어있는 다른 측면을 말해보자면 “생산성 문화”가 있습니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여러 구석에서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이틀 전 동료에게 어떤 "생산성 꿀팁" Productivity Hacks을 애용하시나요? 라는 질문을 던졌고, 백팩 속에서 한데 섞여 돌아다니던 업무용 장비들을 손쉽고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노트북 파우치를 구입했습니다. 불편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 보편적인 방향입니다. 저야 그래도 취향을 고려했지만 극단적으로 실용성을 추구한다면 디자인 같은 건 별로 고려할 부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짐스러울 때도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앞서 제가 얘기했던 “생산성 꿀팁” Productivity Hacks이라고 하면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두고 어떤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입니다. 가장 간단하게는 할 일 목록 To-do List를 사용할 수도 있고 정해진 집중시간 단위를 사용하는 뽀모도로 테크닉, 그날의 할 일을 캘린더에 적어두고 그 일정을 따라가는 Time-boxing 방식, 마지막으로 제가 요즘 사용하고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록하는 Flowtime 등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들을 도입하고 체화하는 것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릴지도 모르고 설령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해도 자유로운 사고를 북돋는 “즉흥성”을 잃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얼마 전 읽은 기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책 소개를 하나 하는데 마침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원제는 “Trying Not to Try: The Ancient Art of Effortlessness and the Surprising Power of Spontaneity.” 번역서 제목은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입니다. 평소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무위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애쓰느라 힘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면 위안 내지는 변명 거리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전 글에서 “자아상 강화” 목적의 구매 행위를 이야기했습니다. 노트북 파우치에 들어있는 물건 중 또 이런 물건이 있습니다. 그건 필기구와 모눈종이 공책입니다. 저는 뭔가 적고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나 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동경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필통 속에는 스위스 브랜드 까렌다쉬의 연필이 있습니다. 필통엔 없지만 까렌다쉬 볼 포인트 펜도 하나 있습니다. 까렌다쉬 필기구들은 써보고 싶은 브랜드여서 구입했다면 필통 속 스태들러 펠트펜은 다른 마음으로 구입했습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이 있는데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등장해 그들의 작업을 소개합니다. 디자이너들이 능숙한 솜씨로 노트에 콘셉트를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감탄을 하는데 그러면서 그들의 필기구에도 눈이 갔습니다. 마치 그들과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면 나도 그런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이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맥북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요. 닮고 싶은 혹은 동경하는 엔지니어가 사용하는 도구들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광고 분야의 오랜 도구인 Celebrity Endorsement를 말한 것이고 저 역시 그런 도구에 넘어간 것이고요. 물론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그런 의도는 없었을 것이고 필기구의 상표 또한 나오지 않아 뭐 차이는 있지만요.


이번에도 소비주의에 한방 당했지만 그래도 알고 당하면 덜 억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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