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해

27주 차의 기록

by 덕순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 처음 원서를 제출했을 때 지원 자격 조건은 '대졸' 이였다. 이 회사에서 일하려면 적어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리고 대학교 4년까지 16년은 공부를 했어야 받아준다는 말이었다.

한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도 이렇게나 많은데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모 맘대로'다.


먹고살기도 힘들던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시절엔 아이를 그저 생기는대로 낳아 아이가 그다음 아이를 맡아 기르곤 했다.

그 아이가 자라 우리네 엄마 아빠가 되어 아이를 낳았을 땐 대부분의 아이들은 굶주리지는 않았지만

아이와 정서적인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삶이 풍요로워지고 유년 시절 아이가 겪는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이 대두되는 요즘에는 많은 예비 엄마 아빠들이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한다. 한 때 큰 인기를 누렸던 육아 코칭 방송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면 결국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고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들은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방법을 떠나 아이를 올바르게 훈육하는 방법을 공부한다.


나도 임신 27주쯤이 되자 평소 즐겨보는 유튜브 영상들이 맛집, 일상 브이로그에서 육아, 애착 관계 같은 것들로 바뀌었다. 최근 제일 많이 본 사람을 꼽는다면 정신과 전문의의자 육아 교육 멘토 오은영 박사다. 나는 그분이 출연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상에 수많은 '금쪽이' 들을 보았다. 특출 나게 문제가 많아 보이는 금쪽이 들을 보면 조금 무서웠다.

'우리 덕순이도 나중에 저러면 어쩌지?'

'그땐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절대로 우리 엄마 아빠처럼은 안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 밀려왔다. 또 어떤 금쪽이 들을 보면 어린 시절 슬펐던 기억이 마음을 후벼 파면서 내가 그 금쪽이가 된 것 마냥 펑펑 울었다.

말이 '육아 교육'이지 사실 내 어린 시절 아팠던 기억을 되돌아보며 '여린 마음을 단단하게 굳히기' 정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아빠는 장남에 일찍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평생 집안의 아버지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장녀에 가난한 집에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해왔다.

엄마는 나에게 본인이 어릴 적에 학교에 다니고 싶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일이나 하라며 본인을 때리고 책가방을 집어던졌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가난해서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자식만큼은 실컷 공부를 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했는데,

너는 호강하는 거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 얘기를 듣고 자랐다.

하지만 엄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내가 호강하는 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가 불쌍했다.


친구들이 학교가 끝나고 놀이터에 모여 놀 때 나는

학원을 가야 했고 시험을 보는 날이면 집에서 몇 점을 맞았는지 매를 들고 지키고 서있을 엄마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수학 시험이 무척 어려웠던 10살 어느 날, 무척 점수가 낮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려워서 몰라서 틀렸다고 하면 더 혼날까 봐 계산 실수를 해서 틀렸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됐든, 엄마는 화가 났고, 매를 들고 나를 혼냈던 기억이 아직도 나에겐 상처로 남았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또 상처가 생기고 곪아버린 상처는 지금도 아주 얇은 막으로 덮어져서 문득문득 터지곤 한다.

도무지 내가 왜 이렇게 어릴 적 불행한 기억을 떨쳐낼 수 없는지 알고 싶어서 대학생 땐 정신과 상담도 몰래 받아보았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단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따금씩

'엄마 때문에 나 너무 힘들었어.' 얘기를 하면 엄마는 나에게 다시 가난했던 본인의 불행을 얘기한다.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엄마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덕순이가 내 뱃속에서 자라는 지금 나는 그 불행이 대물림 되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성숙한 어른이 아이를 낳아 그 아이도 미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 아이가 아이를 낳아 기르면 그 아이도 어딘가 마음 한편이 부족한 어른이 될 것이 뻔했다.

내가 변해야 하는 이유는 당장 엄마 아빠와 나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나와 내 아이의 문제 때문이었다.


불행한 과거는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고 내 의지로 현재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어렵지만 항상 과거만 향했던 내 인생의 나침반을 미래로 향하기로 다짐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하나씩 마음속에 약속을 세웠다.


그중 하나, 덕순이를 절대 때리지 말기.

혼은 낼 수 있어도, 아이를 때려선 안된다. 애초에 '사랑의 매'는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은 멍이 들더라도 끝까지 참고 참아서 아이에게 매 맞을 때의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 강요하기 전에 덕순이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기.

예를 들어 야채를 억지로 먹이기 전에 어떤 야채를 싫어하는지 물어본다. 입맛은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야채가 있다면 더 칭찬해주고

싫어하는 야채가 있다면 강요하지 않고 언젠가 흥미를 가질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공부로 스트레스 주지 않기.

나는 어릴 적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덕순이는 공부 때문에 엄마 아빠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내 아이가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은 생기겠지만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것도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수학 문제 몇 개를 맞고 틀렸는지에 집착하기보다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에 더 귀 기울이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직 네가 아이를 안 길러봐서 그래'

왠지 이 얘기를 꼭 들을 것 만 같아 마음속에만 다짐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다짐들을 하는 것부터 첫출발이라 생각한다.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서 우리 덕순이는 나보다 더

밝고, 긍정적이고, 용감하고, 당돌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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