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에 대한 고찰

26주 차의 기록

by 덕순


나에게 모성애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어릴 적 기니피그를 기른 적이 있었는데 이른 아침에 새끼를 낳는 장면을 봤었다.

엄마 흰둥이는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끼를 낳자마자 젖은 새끼를 핥아주고 함께 나온 태반을 먹어치웠다.

처음에는 태반을 먹는 흰둥이가 너무 이상했다.

건초만 먹는 초식동물인 줄 알았는데 자기 몸에 나온 일부를 먹는다는 게 기괴하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초식동물은 새끼를 낳을 때 함께 나온 태반을 먹어서 다른 포식 동물이 냄새를 맡고 오는 것을 피하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흰둥이는 본능적으로 새끼를 보호하려고 그랬나 보다'라고 한참 뒤에야 이해했다.


작은 동물들도 DNA에 저마다의 모성애가 각인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모성애가 생기는지,

모든 자식들에게 똑같은 모성애를 느끼는지,

정확히 어떤 느낌인 건지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덕순이를 만나게 된 올해,

나는 덕순이에게 언제부터, 어떻게 모성애를 느끼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모성애는 하루아침만에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었다.


덕순이를 처음 만난 날을 회상하자면 내 감정은 사실 '당황스러움' 이였다.

5주 차 1일째라 아기집만 겨우 보이는 데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다가 갑자기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는 것이 꽤나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내 덕순이를 향한 감정은 '걱정스러움'이 되었다.

임신 초기 때라 내 몸도 무척 힘들었는데, 유산의 위험이 제일 높은 시기라 해서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아기는 너무 작아 느껴지지 않는데 혹시라도 내가 나도 모르는 무슨 잘못을 해서 아기가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때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걱정도 사랑의 유형이라 생각한다. 관심이 없다면 당연 걱정도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 12주 차 되는 날, 어느덧 사람 형체가 완성된 덕순이의 모습을 입체 초음파로 볼 수 있었다.

내 뱃속에 세상 편한 모습으로 웅크려 자는 덕순이의 모습을 보았을 때 무언가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이 아이는 날 믿고 이렇게 크고 있는 걸까?'

장난 삼아 나는 덕순이에게 '무단점거' 당했다고 말하곤 했는데 말 그대로 갑자기 내 뱃속을 점거한 덕순이는 아무 걱정 근심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덕순이를 보며 '책임감'이라는 게 생겼다.

나를 믿고 지금도 심장이 뛰고 있는 덕순이를 어떻게든 내가 뱃속에서 건강히 잘 키워서 세상에 나오게 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는 그런 책임감이 들었다.


그리고 17주 차가 지나자 덕순이의 몸짓이 태동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태동은 덕순이가 커 갈수록 점점 더 세지더니

26주 차가 된 지금은 안 느껴지면 이상할 만큼 익숙해져 버렸다.

하루 종일 내 뱃속에서 콩콩거리는 덕순이를 볼 때마다 이 아이와 내가 한 몸이라는 사실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곤 한다.

행복함, 신비로움 같은 감정인데 나와 내 아기가 항상 연결되어있다는 데 느껴지는 사랑 같은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죄책감'도 많이 느끼곤 한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 달리거나 무리해서 집안일을 하는 등 아기에게 좋지 않다는 행동을 했을 때 덕순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만약 잘못해서 덕순이가 다치게 되면 그 죄책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슬픈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평소보다 훨씬 노력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완벽하게 참지는 못해도 하루 세잔은 기본으로 마시던 커피를 연한 커피 한 잔으로 줄이고, 저녁마다 먹던 과일을 줄이고 대신 고기와 샐러드를 늘렸다.


요즘엔 코로나가 제일 걱정이다. 내가 만약 출퇴근을 하고, 회사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중에 코로나에 걸리게 된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러면 부디 나만 아팠으면 좋겠다. 덕순이마저 아프다면 그 죄책감과 걱정 슬픔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모성애의 근원은 '죄책감'이라고 한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는 본능적으로 본인을 탓하기 마련이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덕순이를 7개월째 품고 있는 지금에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아파도 내 아이는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이 바람이 곧 사랑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모성애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서서히 물들어가는 물 위에 떠 있는 수채화 물감 같다.

이 물감은 매우 다채로운 색이어서 한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 덕순이가 찾아와서 함께 살아가면서 더 아름답게 물들어갈 색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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